여권수뇌부가 노동관계법 개정으로 빚어진 사태해결을 놓고 법개정 당시의
입장으로 다시 선회했다.

이에따라 노동계의 파업사태와 정부의 법집행 의지가 정면 충돌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또한 현사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영수회담을 포함한 여야 대화는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며 그에따른 여야 대치국면도 심화될 조짐이다.

신한국당은 12일까지만해도 전반적인 분위기는 현사태에 대한 정부차원의
대응이나 노동관계법 재개정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쪽이 우세했다.

그러나 13일 오전 이홍구대표 주재로 열린 고위당직자회의와 확대당직자회의
가 끝난뒤 당의 분위기는 급선회했다.

예정에 없던 고위당직자회의가 오후 2시에 다시 열렸고 이 회의에서는
"법개정당시의 원칙을 고수한다"는 당수뇌부의 방침이 재확인 됐다.

이같은 기류는 당정 최고위층간의 의견조율과정에서 결정됐고 이날 아침
당쪽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청와대의 기류가 강하게 전달된것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일고 있다.

이날 고위당직자회의가 끝난뒤 김철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어제 오늘
언론에서는 당론의 근간과는 매우 다른 뉴앙스의 보도가 많으며 여러가지
부정확하고 불완전한 표현, 그리고 당론이 아닌 비공식 견해들이
돌아다닌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김대변인은 특히 "우리당이 노동관계법개정에 융통성이 있는것 처럼
비쳐지고 있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못박았다.

물론 이같은 대변인의 공식발표는 앞으로 야권이 노동관계법의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등에 대비한 전략일수도 있다는 분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같은 급선회는 현 상황에서 한발 물러설 경우 입을 엄청난 정치적
상처를 여권수뇌부가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을 낳고 있다.

노동관계법의 재개정에 응할 경우 개정안의 "졸속성안"은 말할것도 없고
형식상으로도 구시대적인 새벽기습처리까지 동원한데 대한 정치적 책임을
면키 어렵기 때문이다.

또 이번 사태로 밀리게 될경우 정국주도권이 상당부분 야권에 넘어가
연말의 대선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이같은 분위기는 국민회의측이 "이대표 스스로 자랑스럽다고 규정한
노동법등의 날치기 처리가 국가적 위기사태를 불러온 만큼 이대표는 마땅히
그에 대해 책임질 국면을 맞았다"며 사퇴용의를 묻는 사태로 이어진데 대한
반격이기도 하다.

여권일각에서는 또 현재의 상황이 "위기"이며 궁극적으로는 여야 영수회담
이 필요하기는 하나 김영삼대통령이 여론이나 야권의 압력에 밀렸다는
인상을 줄수 없다는 것도 이같은 급선회의 배경중 하나라고 분석하고 있다.

임기 1년을 남겨 놓은 시점에서 여론의 힘을 업은 야권에 밀릴 경우 자칫
김대통령의 권위에 상당한 타격을 주게되고 이는 레임덕현상을 가속화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했을것이라는 얘기다.

때문에 사태를 좀더 지켜본뒤 김대통령이 특유의 돌파구를 찾을 것으로
점치는 인사들도 많다.

김철대변인이 영수회담개최 가능성에 대해 "영수회담에 관해서는 김대통령
이 연두회견에서 밝힌 것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다"고 못박고 나온 것도
영수회담을 거부했다가 "밀려서" 하게된다는 인상을 줄수 없다는 여권
수뇌부의 뜻이 담겼다고 볼수 있다.

또 한가지는 노동법의 재개정에 응할경우 원래의 개정취지를 살리지도
못하는 타협안을 만들어야 하는데다 어떠한 경우라도 경제회생을 꾀하면서
양측을 다 만족시킬수 있는 묘안은 없다는데 여권의 고민이 있다고 봐야
한다.

이제 여권은 당초 방침대로 국민을 상대로 노동법개정의 불가피성을 설득해
나가면서 각계의 여론을 수렴해 근로자의 권인보호책을 시행령에 대폭 반영
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신한국당은 전 여권조직을 총동원, 노동법개정의 불가피성을 홍보해 나갈
예정이다.

신한국당이 각계와의 연쇄면담을 진행하는 가운데 노동계와의 TV공개토론을
제의한 것이 노동관계법의 재심의를 위한 의견수렴과정으로 비쳐졌으나 이
또한 신한국당의 진의와는 다르다.

시행령상에 다소 신축적인 내용을 담는다는 선인 것이다.

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와관련, "TV토론등은 공세적 대화를 하겠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여권이 정치적 명분이나 법개정의 당위성을 고수할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사태진전에 따라 신축적인 입장을 다시 내비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어려운 상황"이라는데는 당내인사 아무도 이의들 달지 않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 박정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