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잇달아 열린 전경련 회장단회의와 경총 파업특별대책반회의에서
나온 메시지는 크게 보아 두 가지다.

불안해하고 있는 근로자들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머뭇거리고 있는 정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확고한 노동법 시행의지를 촉구한 것이다.

우선 전경련이 각 기업별로 고용안정대책기구를 설치해 고용불안 최소화
방안과 해고근로자의 재취업을 위한 직업훈련방안 등을 마련키로 한 것은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계 뿐만 아니라 심정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정리해고제나 변형근로제가 노동계의 우려와는 달리 "무차별 해고"나
"노동력 착취"가 절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온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들이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책을 마련해 나가겠다는 약속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 그렇다.

전경련 관계자는 "정리해고제는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이 경영
정상화를 위한 자구노력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한 장치일 뿐"이라며 "정부와
재계 차원의 인적자원개발투자 강화 등 보완조치가 마련되면 근로자들은
걱정할 것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경총 관계자도 "한국의 새노동법에 관심이 많은 ILO(국제노동기구)등도
정리해고제와 변형근로제는 문제삼지 않고 있다"며 "이 제도를 인정하는
선상에서 재취업교육과 신기술교육강화등을 요구하는 것이 선진 노동운동의
최근 추세"라고 설명했다.

보완책이 약속되고 구체적인 조치가 취해진다면 상당수의 근로자들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재계는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만큼 재계가 새노동법을 보는 시각은 하나도 바뀐게 없다.

경총 파업대책회의에서 "곧 만들어질 노동법 시행령이 새노동법 취지에
어긋나도록 개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채택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정부가 고생끝에 마련한 새노동법을 정치논리에 밀려 재개정하는 일은
물론 20일께 입법예고되는 시행령이 정리해고제의 요건을 엄격히 하는 등
노동계의 의견을 대폭 수용할 경우 정부의 노동개혁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는게 재계의 시각이다.

특히 경총이 "이번 총파업이 근로조건 투쟁을 넘어 정치투쟁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절하고 엄정한 조치가 요구된다"고
강조한 것은 노동법과 관련해서 더 이상의 양보는 있을 수 없다는 표현에
다름 아닌 것이다.

전경련 회장단이 "모든 정당은 정파의 이해를 초월해 현재의 파업사태를
수습하는데 앞장서 달라"고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화난 노동계에 유화제스처를 취하는 동시에 갈팡질팡하는 정부 여당
에도 단호한 노동법 시행의지를 촉구한 것이 이날 재계회의이다.

이날 연이은 두차례 회의를 통해 이번 파업사태를 보는 재계의 위치는
완전히 정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재계가 파업사태에 끝까지 "당사자"는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이제 굳혔다는
것이다.

노동계나 정부 양쪽으로부터 다소 욕을 먹는 일이 있더라도 정치논리가
경제논리에 개입되고 그로 인해 경제자체가 위협받는 일만은 막아보겠다는
게 재계의 선택인 셈이다.

모그룹 관계자가 "이 시점에서 재계가 큰 목소리를 내면 낼수록 사태는
악화될 뿐"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노사문제에 관한 한 변수가 많아질수록 사태해결은 더뎌진다는 그동안의
경험칙이 재계의 선택폭을 좁힌 것이다.

경총이 이날 회의에서 참석규모나 일정등 구체적인 계획을 잡지 못한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계 결의대회"를 개최키로 한 것은 이런 재계의
고민을 보여주는 것이다.

< 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