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직칼럼] 대선과 인품감별기준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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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안다는 것도 쉽지않지만 사람의 됨됨을 알아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그것은 중국의 성군인 요임금도 어렵게 여겼다는 일이다.
요즘 항간에서 스스로 선택해 뽑은 대통령에 대해 "정말 그럴줄은 몰랐다"
는 식의 푸념이 오가는 것을 들으면 역시 범인이 사람됨됨이를 미리 알기는
힘든가 보다.
그러나 공자의 말처럼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사람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의 사람됨됨이는 자연히 드러나게 마련
이다.
사람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숨길 수 없는 존재다.
이런 관점에서 옛 사람들은 인물 평가기준을 세웠고 이에따라 인재를
골라서 썼다.
조선왕조시대의 인물의 일반적 평가기준은 "신언서판"이었다.
첫째는 타고난 용모와 체격이 아름다워야 했다.
둘째는 말이 어눌함없이 유창해야 했다.
셋째는 글씨를 잘 쓰고 글을 잘 지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판단이 정확해야 했다.
이 네가지를 갖춰야만 이상적인 인물로 선택돼 벼슬길도 활짝 열렸다.
이같은 인물평가기준은 조선시대 소설의 남주인공 묘사에도 그대로 적용
되고 있다.
"춘향전"의 이몽룡은 두목지같은 풍채와 이태백의 문장, 왕희지의 글씨
솜씨를 지닌데다 도량이 푸른 바다같고 지혜가 활달한 뛰어난 선비였다.
"숙영낭자전"의 백선군은 용모가 준수하고 성품이 온유하며 문필이 자못
유려했다.
이밖에 "옥낭자전" "구운몽" "사씨남정기" 주인공들의 인품도 대동소이
하다.
또 이들에게는 한결같이 효성과 충성이 지극했다는 유교적 도덕성이 강조
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적 특색이다.
특히 국가의 최고지도자였던 군왕에게는 "신언서판"외에 "총명강단"이라는
특별한 자질이 요구됐다.
연산조의 성세명이 부제학때 임금에게 올린 상소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간명하면서도 정확하게 적혀있다.
"사람의 말을 듣고서 능히 그 옳고 그름을 아는 것을 총이라 이르고,
사람의 행동을 보아서 능히 그 간사하고 정직함을 가리는 것을 명이라
이릅니다.
또 옳고 그름이 이미 분변되고 간사와 정직이 이미 판변되어 간신이 능히
변동시키지 못하는 것을 강이라 이르고, 옳은 것을 취하고 그른 것을 버리며
간신을 베고 정직한 자를 등용하되 확고하여 의심이 없음을 단이라 이릅니다"
군왕의 인품에 대한 판단기준이기도 했던 "총명강단" 4자에 함축돼 있는
참뜻은 오늘날의 대통령에게도 꼭 필요한 자질인듯 싶어 흥미롭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적 인물판단기준이라고 해야할 "신언서판"이나 "총명
강단"은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인물판단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었지만 충분
조건은 되지못했다.
조선조말의 기철학자 혜강 최한기(1803~1877)는 인품을 감별해 인물을
선택하는 원칙을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50여년의 연구끝에 1860년에야 완성시킨 "인정"(25권)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통해 살아움직이는 변화속에서 사람의 인품을 판단하는 새로운 인물
판단 기준을 만들었다.
먼저 용모를 통해 개인의 기품과 자질을 분별한뒤 그동안 그가 해낸 일을
통해 능력과 성과를 보고 그것이 인도(도덕성)에 합치하는지 여부에 따라
사람됨됨이를 평가하도록 했다.
그가 사람이면 누구나 갖추고 있는 인간의 갖가지 성품의 요소들을 면밀
하게 분석해 만든 "사과열표"라는 인물평가도표는 항목이 1천24개조나 돼
그만큼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짜여있다.
1백여년 전에 한국에서 인간평가에 대한 이만한 연구성과가 나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한 국가의 정치적 성쇠가 현명한 인물을 쓰느냐 용렬한 인물을 쓰느냐에
달렸다는 신념에서 나온 이 인간평가기준이 채택돼 한번도 쓰이지 못하고
조선왕조가 망해버린 것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다.
요즘 지상에는 "9룡"이니, "14룡"이니 하는 대선 예비주자들에 관한 인물
평가가 난무하고 있다.
"인상좋고 원만하다" "똑똑하고 청렴하다" "경력과 경륜이 화려하다"
"지도력이 탁월하다"는 등의 장점이 장황하게 나열되고 있고 곁들여 "융통
성이 없다"느니 "주관이 없다"느니 하는 천편일률적인 단점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평가가 얼마나 객관성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옛날 "신언서판"의 수준에도 못미치는 인물 평가가 유권자들에게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막연한 이미지에 끌려 잘생긴 후보자, 멋진 공약을 청산유수처럼
되뇌던 후보자에게 보기좋게 당한 경험이 있다.
뽑아 놓은 뒤에 후회한들 아무소용이 없다.
뽑기 전에 후보에 대한 정확한 평가정보가 필요하다.
좀더 객관적인 현대의 인물평가기준이 관련부문 학자에 의해 나올 때도
됐는데 아직 소식이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혜강의 인품감별법을 거론하는 것도 실은 그 때문이다.
"처음에 착하지 않은 이는 없으나 끝내 착한 이는 드물다"는 군왕의 속성
을 나타내는 옛말을 뒤집기 위해서라도 대선예비주자들의 인품 감별기준의
마련은 시급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5일자).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그것은 중국의 성군인 요임금도 어렵게 여겼다는 일이다.
요즘 항간에서 스스로 선택해 뽑은 대통령에 대해 "정말 그럴줄은 몰랐다"
는 식의 푸념이 오가는 것을 들으면 역시 범인이 사람됨됨이를 미리 알기는
힘든가 보다.
그러나 공자의 말처럼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사람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의 사람됨됨이는 자연히 드러나게 마련
이다.
사람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숨길 수 없는 존재다.
이런 관점에서 옛 사람들은 인물 평가기준을 세웠고 이에따라 인재를
골라서 썼다.
조선왕조시대의 인물의 일반적 평가기준은 "신언서판"이었다.
첫째는 타고난 용모와 체격이 아름다워야 했다.
둘째는 말이 어눌함없이 유창해야 했다.
셋째는 글씨를 잘 쓰고 글을 잘 지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판단이 정확해야 했다.
이 네가지를 갖춰야만 이상적인 인물로 선택돼 벼슬길도 활짝 열렸다.
이같은 인물평가기준은 조선시대 소설의 남주인공 묘사에도 그대로 적용
되고 있다.
"춘향전"의 이몽룡은 두목지같은 풍채와 이태백의 문장, 왕희지의 글씨
솜씨를 지닌데다 도량이 푸른 바다같고 지혜가 활달한 뛰어난 선비였다.
"숙영낭자전"의 백선군은 용모가 준수하고 성품이 온유하며 문필이 자못
유려했다.
이밖에 "옥낭자전" "구운몽" "사씨남정기" 주인공들의 인품도 대동소이
하다.
또 이들에게는 한결같이 효성과 충성이 지극했다는 유교적 도덕성이 강조
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적 특색이다.
특히 국가의 최고지도자였던 군왕에게는 "신언서판"외에 "총명강단"이라는
특별한 자질이 요구됐다.
연산조의 성세명이 부제학때 임금에게 올린 상소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간명하면서도 정확하게 적혀있다.
"사람의 말을 듣고서 능히 그 옳고 그름을 아는 것을 총이라 이르고,
사람의 행동을 보아서 능히 그 간사하고 정직함을 가리는 것을 명이라
이릅니다.
또 옳고 그름이 이미 분변되고 간사와 정직이 이미 판변되어 간신이 능히
변동시키지 못하는 것을 강이라 이르고, 옳은 것을 취하고 그른 것을 버리며
간신을 베고 정직한 자를 등용하되 확고하여 의심이 없음을 단이라 이릅니다"
군왕의 인품에 대한 판단기준이기도 했던 "총명강단" 4자에 함축돼 있는
참뜻은 오늘날의 대통령에게도 꼭 필요한 자질인듯 싶어 흥미롭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적 인물판단기준이라고 해야할 "신언서판"이나 "총명
강단"은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인물판단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었지만 충분
조건은 되지못했다.
조선조말의 기철학자 혜강 최한기(1803~1877)는 인품을 감별해 인물을
선택하는 원칙을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50여년의 연구끝에 1860년에야 완성시킨 "인정"(25권)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통해 살아움직이는 변화속에서 사람의 인품을 판단하는 새로운 인물
판단 기준을 만들었다.
먼저 용모를 통해 개인의 기품과 자질을 분별한뒤 그동안 그가 해낸 일을
통해 능력과 성과를 보고 그것이 인도(도덕성)에 합치하는지 여부에 따라
사람됨됨이를 평가하도록 했다.
그가 사람이면 누구나 갖추고 있는 인간의 갖가지 성품의 요소들을 면밀
하게 분석해 만든 "사과열표"라는 인물평가도표는 항목이 1천24개조나 돼
그만큼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짜여있다.
1백여년 전에 한국에서 인간평가에 대한 이만한 연구성과가 나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한 국가의 정치적 성쇠가 현명한 인물을 쓰느냐 용렬한 인물을 쓰느냐에
달렸다는 신념에서 나온 이 인간평가기준이 채택돼 한번도 쓰이지 못하고
조선왕조가 망해버린 것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다.
요즘 지상에는 "9룡"이니, "14룡"이니 하는 대선 예비주자들에 관한 인물
평가가 난무하고 있다.
"인상좋고 원만하다" "똑똑하고 청렴하다" "경력과 경륜이 화려하다"
"지도력이 탁월하다"는 등의 장점이 장황하게 나열되고 있고 곁들여 "융통
성이 없다"느니 "주관이 없다"느니 하는 천편일률적인 단점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평가가 얼마나 객관성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옛날 "신언서판"의 수준에도 못미치는 인물 평가가 유권자들에게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막연한 이미지에 끌려 잘생긴 후보자, 멋진 공약을 청산유수처럼
되뇌던 후보자에게 보기좋게 당한 경험이 있다.
뽑아 놓은 뒤에 후회한들 아무소용이 없다.
뽑기 전에 후보에 대한 정확한 평가정보가 필요하다.
좀더 객관적인 현대의 인물평가기준이 관련부문 학자에 의해 나올 때도
됐는데 아직 소식이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혜강의 인품감별법을 거론하는 것도 실은 그 때문이다.
"처음에 착하지 않은 이는 없으나 끝내 착한 이는 드물다"는 군왕의 속성
을 나타내는 옛말을 뒤집기 위해서라도 대선예비주자들의 인품 감별기준의
마련은 시급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