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다는 판단은 이제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파업사태에 따른 흥분에서 한발짝만 물러나 생각해보면 작금의 갈등과
대립이 얼마나 우리경제에 치명적인지를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불과 20여일의 파업사태로 무려 2조원의 생산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2조원이란 손실도 손실이지만 거기에 그치는
일이 아니다.

대기업의 조업중단이 수많은 하청업체와 관련기업을 도산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수출품을 적기에 선적할 수 없게 되자 외국의 바이어들이 경쟁국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생산 및 수출기반이 붕괴돼 지난 수십년간
피땀으로 구축해온 자립경제의 기반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가 어제 경제정책방향 보고회의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당초
예상보다 낮은 6% 내외로 잡은 것이나, 내년에는 경제활력이 더욱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 것은 경제주체들의 뼈를 깎는 노력 없이는 경제회복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여진다.

이같은 경제현실을 놓고 볼때 최근 확산되고 있는 노동계 파업사태에 대한
재계의 우려는 결코 과장이나 엄살일 수 없다.

전경련과 경총은 지난 14일 각각 회장단회의와 파업특별대책반회의를 열고
고용불안해소를 위한 범 재계차원의 고용안정대책기구 설치 등 나름대로의
몇가지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했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노동계 파업이 노사는 물론 국민 모두를 공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경제계의 인식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조건없는
"선조업 후대화"해결원칙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

사태를 이 지경에까지 몰아넣은 책임을 따지자면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노동계도 경영계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혹시 노동계 지도부는 현 정권의 누적된 실정에서 비롯된 민심이반이
노조측에 유리하게 전개돼 나간다고 판단해 정부가 백기를 들 때까지 계속
밀어붙이자는 속셈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노동운동이 한계를 넘어 정치-이념투쟁으로 변질될 때 여론이 어떻게 등을
돌렸는지는 지난날의 경험이 말해준다.

지금 노-정 대치에서 노측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궁극적으로는 서로 손을 잡고 무한경쟁을 헤쳐나가야 할 경제주체들이
대화조차도 거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노동계는 이쯤에서 경제난국 심화에 따르는 국민불안을 깊이 인식, 무조건
직장에 복귀해 일터를 지키면서 대화에 임하는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

경제가 죽고나면 경영계가 요구하는 경쟁력향상도, 노동계가 요구하는
삶의 질 향상도 모두가 공염불일 뿐이다.

지금은 경제회생을 위한 부담을 전국민이 나누어지는 공동체정신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