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섭 < 증권거래소 연구위원 >

최근 자본자유화 과정에서 눈에 띄는 특징중의 하나가 경영권 분쟁이라
할수 있다.

특히 이전의 상황과 다른 새로운 양상은 주주권 보호문제가 결부되면서
복잡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복잡한 문제점들을 핵심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전환사채와
관련된 문제들이다.

전환사채는 사채와 주식의 장점을 가지고 주로 자본조달기능이 우선적으로
고려된 미국적 전통을 지닌 자본증권이다.

그런데 자본증권이 언제부터인지 경영권의 쟁탈 또는 유지를 위한 부당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주주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문제아로 등장하였다.

우선 제3자 배정이 관행화하면서 주주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러한 관행이 일반화되면서 대주주들이 경영권의 유지
를 위한 부당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종전에는 공모의 형식을 취한후 대주주들이 편법으로 인수했으나 최근에는
노골적으로 사모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왜 이같은 현상이 일어날까.

이는 근원적으로 우리 상법의 입법, 법해석및 법실무 모두가 오류를 범하고
있는 데에 터잡고 있다.

우선 입법상으로는, 1984년 상법개정때 일본법과 미국법을 모방하면서 우리
법체계의 통일성을 무시한 것이 문제이다.

미국적 전통을 가진 전환사채는 미국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원래 미국법에서는 각주의 회사법이 자신들의 주에 회사를 유치하고자
주주권의 축소경쟁을 벌여 기존주주에게 신주의 우선적 인수권을 박탈하였다.

따라서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하는 경우에도 기존
주주에게 배정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법은 기본적으로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회사법상 주주권 보호의
핵심원리로 하고 있다.

따라서 기간의 유예만 있을뿐 신주발행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제도를 도입할때 기존의 주주에게 그 우선적 인수권을 부여
했어야 했다.

우리의 모법이랄수 있는 유럽법도 이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이 원칙을 관철할수 있다면 현재 일어나는 모든 문제점이 일거에 해소될수
있을 것이다.

법해석상으로도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리 상법은 신주 발행의 경우와는 달리, 회사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이사회가 자유롭게 CB나 BW를 제3자 배정(사모 포함)하도록 한 것은 사실
이다.

그러나 주주 이외의 자에게 배정하는 경우에는 정관이 정함이 없으면 주주
총회의 특별결의라는 엄격한 절차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분명히 기존 주주의
이익을 배려하고 있다.

만일 제3자 배정(사모 포함)이 무제한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주주들은 언제나
예외없이 비례적 지분율이 감소함에 따른 주주권의 약화와 직.간접적인
재산상의 손실을 입게 되어 회사법의 핵심원리가 와해되고 마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 상법은 정관을 주주권의 침해를 가능케 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회사법의 핵심인 주주권보호가 심각하게 침해받는 경우에는 정관의 규정도
기본 원칙에 의하여 통제받아야 되고, 현재의 일반화된 관행은 당연히 시정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법제도 전반을 뒤흔들고 있는 편법을 시정하기 위하여는
다음과 같은 인식과 개선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우선 현행법의 구조하에서 엄격한 법해석(특히 법원의 판결)을 통하여 CB나
BW를 제3자에게 배정하거나 사모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주주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지 못하도록 통제의 선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 통제기준은 자본조달의 목적이 아닌 경영권 유지만을 목적으로 하거나,
주주평등의 원칙이 침해되는 경우를 기준으로 제시한다.

제도적으로는 제3자 배정을 위한 요건의 규정화를 들수 있다(적어도 상장
회사에 적용되는 특별규정으로 정할 수도 있다).

유럽법의 예에서와 같이 기존 주주에게 배정하지 않는 경우에는 주주권리의
침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전환가격이 전환대상 주식시세에 근접하여야 하고,
그 발행규모도 자본금 대비 인정규모(예 30%이하) 이하일 것을 요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비록 공모의 형식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일단 인수기관의 손에
넘겨지고 난 후에는 누가 인수해갔는지 전혀 밝혀지지 않게 되어 실질적으로
는 공모가 아닌 사모와 다름없는 결과가 자주 나오고 있다.

따라서 공모의 본질에 맞게 발행과정의 투명성이 확보되도록 하는 제도개선
이 반드시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최근의 경영권 분쟁과정에서 나타타난 문제점들은 상이한 전통을
가진 규율대상이 체계내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법체계에 모순이 생겼기 때문
이다.

따라서 CB와 같이 자본조달기능이 우월적으로 고려된 것이라도 일단 우리
법에 수용되어 규율되면 우리 법체계의 통일성하에서 해석되고 운영됨이
마땅하다.

일본에서도 신주이든 CB이든 주주의 우선적 인수권을 법률상 인정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오로지 경영권 유지에
이용될 목적으로 제3자 배정 또는 사모발행되는 경우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하물며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핵심원리로 하는 우리법상 이 원리가 와해됨
으로써 나타나는 다양한 불법과 편법은 당연히 제도개선과 엄격한 법해석을
통하여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