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개정에 따른 분규로 산업현장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서도
올해 노사간 임금협상에 한가닥 밝은 빛을 던져주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포항제철 계열의 포스코개발이 노사합의하에 올해 근로자들의 임금을
동결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또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있는 한보철강도 근로자들이 스스로 임금을
동결키로 하고 어제 결의대회를 가졌다고 한다.

지난해말 일부 30대그룹들이 올해 임금총액동결을 추진하겠다고
회사차원에서 발표하긴 했지만 실제로 대기업에서 임금동결이 노사간에
합의되긴 올들어 처음이다.

국내 도급순위 12위의 탄탄한 종합건설회사인 포스코개발의 임금동결
합의는 건설시장 전면개방을 맞아 경쟁력강화를 위한 미래지향적 노사협력의
한 표본이라는 점에서, 또 한보철강의 경우는 발등의 불을 끄려는
자구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임금교섭이라고 하면 으레 2~3개월씩 밀고 당기는 소모전을 치른
끝에 노사가 모두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타협에 이르게 되는 것이
상례라고 할수 있었다.

때문에 노사가 교섭도 거치지 않고 임금문제, 그것도 "동결"에 합의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신뢰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것도 노동계는 물론 국가적 관심이 온통 새 노동법을 둘러싼 분규에만
쏠려있는 판에 궁극적으로는 올해 노사간 최대 이슈가 될 임금문제를
체력소모없이 일찌감치 해결했다는 것은 소중한 선례를 만들었다고도 할수
있다.

우리는 이같은 무교섭 임금타결이 평소 사용자측의 성실한 자세를
바탕으로 노사간 신뢰가 두텁게 쌓인 결과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처럼 몇몇 대기업에서 뚜렷한 노사화합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기는 하나 올해 산업현장의 전반적인 노사관계는 그리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여느때 같으면 지금쯤 중앙단위 노사간에 임금 가이드라인 협상이
시작됐을 때이지만 올해는 노동법파문으로 임금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노동법파문이 가라앉는다 해도 곧바로 임금협상으로 이어지게 돼
있어 산업현장은 장기간 시달림을 받아야할 형편이다.

게다가 노조측이 노동법개정에 따른 불만을 임금협상에서 보상받으려
할 경우 올해의 임금교섭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울지도 모른다.

중앙단위 임금합의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노동단체의 분열이 노사관계를
다시 대립구도로 몰아갈 위험성이 큰 올해의 상황으로 보아 개별기업
노사의 책임은 어느때보다 무겁다고 하겠다.

이러한 때에 지금 우리 경제와 기업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제대로 보고
욕구의 자제를 통해 노사화합을 실천하는 기업들이 있다는 것은 여간
마음든든한 일이 아니다.

이같은 새로운 현상이 고용과 소득의 안정이라는 현실감각을 바탕으로
각기업의 경영여건에 맞게 임금을 결정하는 합리적인 추세로 연결되었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