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의 청와대 영수회담은 사후에 나온 보도내용을 자세히 보면
모든 해법을 그 속에 담고 있다.

당일 사전 보도로는 영수들의 의견이 심히 엇갈려 뚜렷한 합의가
없었던 것으로 인상지어 졌으나 실은 끝머리에 가서 대통령이 야측의
요구를 모두 국회에서 논의해 풀자는 선으로 양보를 했다.

따라서 그 뒤 여-야당이 각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 원내에서 충분히
토론을 하고 개정법을 재개정하는 것이 첩경이다.

그게 아니고 회담 이전으로 되돌아가 야권은 통과무효를 계속 우기고,
노측은 수요일 파업을 강행하니 이로 인한 국력의 쇠퇴는 언제 무엇으로
메우려는지 답답하다.

노동법만 해도 핵심 문제점은 충분히 노출이 됐으므로 새삼스레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재처리가 될것이며, 안기부법도 문제조항을 재론,
독소를 빼면 굳이 못할 일도 아니지 않는가.

물론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의결무효판정을 내리는 일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3선 개헌 등 역대 집권당의 무리를 극한
날치기 통과, 그밖에 크고 작은 국회의 변칙의사진행 악습은 뿌리깊이
이어져 왔다.

역사 바로 세우기 시각에서 선례를 세우고 싶은 충동은 이해할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일은 전후 사정이 다르다.

무엇보다 법개정의 동기에 있어서 정권유지나 특정집단 영달 저의와는
거리가 멀다.

더욱 노동법 개정은 세계 무역체제 급변속에 기업의 경쟁력 제고가 국운을
좌우하는 절박한 시점에서 시의에 맞는 법제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그것은 신한국당 국민회의 자민련등 어느 정당의 노선이 문제가 아니다.

만일 중국처럼 좌익정당이 집권했다고 가정해 보라.

아마도 내리막의 산업 경쟁력을 회복, 세계 시장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선 훨씬 더 적극적인 방어수단을 강구할 것이 틀림없다.

한국은 여전히 세계의 관심거리, 그러나 OECD 가입후엔 시각이 달라졌다.

무자원 분단 빈국에서 성장을 거듭한 나라, 거듭된 군사정권 아래서
민주역량을 키워 문민시대를 연 나라라는 과거의 긍정적 인식이
OECD가입 논의가 본격화된 근년에 오면서 방향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한국은 도와줘도 괜찮은 개도국이 아니라 진실이상 버거운 경쟁상대로
비칠 뿐이다.

OECD 회원국의 경우는 신참자에 대한 일종의 텃세가 작용, 더 비판적이다.

그런 그들에게 마치 법개정 타당성에 최종 판정이라도 고대하는 듯
몸짓을 함은 온당치 않다.

참고하는 정도라면 모른다.

대선은 아직 11달이 남았는데 정치권은 모든 것을 집권경쟁에 걸고,
노동계는 한 주간 중간에 정기휴업,모두 목적상실이니 일이 풀리기 보다
더 꼬여 간다.

사사건건 경쟁상대를 코너에 몰아넣어 차기를 노리는 것만이 정치인의
속마음이고, 1주일에 하루를 파업하면 산업현장의 생산성은 그이상
실추되어 큰 상처를 입고 만다.

이러다간 정치 경제가 만신창이, 민주통일 커녕 나라의 한치 앞이
안보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