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집에는 문이 몇개나 있을까.

입구이자 출구인 문은 외부세계를 잇는 통로인 동시에 내면의 풍경을
비춰주는 창이다.

한여자와 두남자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영화 "쥴 앤 짐".

프랑스 누벨바그 (새로운 물결)의 진수를 보여주는 수작이다.

극중 남녀는 진부한 삼각관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를 끌어 당기고
밀어내는 사이.

카메라는 여주인공 카트린을 가운데 두고 두개의 문이 서로 엇갈리게
열렸다 닫히는 과정을 따라 움직인다.

1차 세계대전 직전의 파리.

절친한 친구인 쥴과 짐은 우연히 접한 조각상의 미소에 매료되고,
조각상을 닮은 여인 카트린을 발견한뒤 함께 사랑한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카트린은 "문이 많은 집".

여성과 남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물과 불의 이미지를 지녔다.

이 상반된 문으로 두 남자가 드나든다.

쥴과 결혼해 라인강변의 오두막에 살던 카트린은 전쟁이 끝난뒤 이곳으로
찾아온 짐에게 또다른 마음의 문을 열어보인다.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짐을 보고 쥴은 "그녀를 사랑해도 좋아.
난 그녀 곁에 있는 것으로 만족해"라고 말한다.

한 집에서 아예 살림을 차린 세사람. 그러나 그녀의 종잡을수 없는
열정은 짐과의 관계마저 위태롭게 하고, 위험한 줄타기끝에 마침내 짐을
자동차에 태운채 강물로 추락한다.

쥴과 짐은 똑같이 문학과 인생을 사랑하지만 성격은 판이하다.

쥴이 순수하고 나약한데 비해 짐은 노련하고 적극적이다.

쥴은 카트린을 숭배하는 수동적 인물이지만 짐은 서로의 관계를 냉정하게
분석하며 그녀를 거부하기도 하는 능동적 캐릭터.

세사람의 성격차이는 비극의 원천이면서 사랑을 가능케 하는 힘이다.

두남자의 친구이자 부부, 연인이었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카트린은 현실에
부리내리지 못하는 이상주의자.

1차대전을 거치면서 문화적 순수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불안의 시대로
접어든 유럽사회가 그녀의 비극적인 운명과 대칭된다.

( 25일 동숭씨네마텍 개봉 )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