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파일] (서울단상) 조이 이 <코리안벤처캐피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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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이 < 코리안벤처캐피털사 투자분석부 >
한번도 가보지 못한 "조국"에서 일하겠다는 결심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한국계"란 떨칠수 없는 꼬리표를 달아준 나라에 대한 원초적 궁금증을
풀기 위해 나는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조국...
곳곳에선 "문화차"라 불리는 낯선 경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입사면접은 차라리 충격이었다.
면접관들은 의자에 앉자마자 다짜고짜 질문했다.
"부친 직업은 뭡니까, 어느 대학 출신이지요"
도대체 그건 왜 묻는걸까.
"직장을 구하는 사람은 전데요, 아버지가 아닙니다"
순간 면접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자라온 환경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 질문은 더 황당하다.
"결혼은 했나요? 언제 결혼할 예정입니까"
이쯤되면 면접이 아니라 법정에서 심문받는 기분이다.
미국에서라면 이런 질문들은 틀림없는 고소감이다.
가족 친척 연애경험...
도대체 내 "능력"에 대한 질문은 언제 나올까.
"마케팅을 전공했고 컨설팅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2개국어에 자신있습니다"라고 얘기할 기회말이다.
하지만 뒤를 잇는 질문은 정말 기절초풍할 정도다.
"주량이 얼마나 됩니까, "소주 몇병"으로 답하세요"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장난"이 아닌 것이다!
이유를 물으니 한국에선 비즈니스에 술이 빠지지 않기 때문이란다.
세상이 달라도 이렇게 다를까.
미국에선 자신감에 가득찬 태도가 면접의 성공비결이다.
함빡 지은 미소에 후한 점수가 매겨진다.
면접관이 주목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과 경력이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태도가 중요하다.
면접관들이 나보다 "연장자"이기 때문이다.
"나"보다는 배경에 질문의 초점이 맞춰진다.
그래서 가족들이 나의 "한국행"을 말렸나 보다.
이 엄청난 차이들을 극복하지 못하리라는 걱정에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한국식 면접"에 통과했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의 문화에 완전히 익숙해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나의 하루하루는 크고 작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런 "경이"들을 마주칠때 되뇌는 말이 있다.
"서울에선 서울법을"
이것이 바로 낯선 조국생활에 적응해나가는 나의 노하우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5일자).
한번도 가보지 못한 "조국"에서 일하겠다는 결심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한국계"란 떨칠수 없는 꼬리표를 달아준 나라에 대한 원초적 궁금증을
풀기 위해 나는 무작정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조국...
곳곳에선 "문화차"라 불리는 낯선 경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입사면접은 차라리 충격이었다.
면접관들은 의자에 앉자마자 다짜고짜 질문했다.
"부친 직업은 뭡니까, 어느 대학 출신이지요"
도대체 그건 왜 묻는걸까.
"직장을 구하는 사람은 전데요, 아버지가 아닙니다"
순간 면접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자라온 환경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 질문은 더 황당하다.
"결혼은 했나요? 언제 결혼할 예정입니까"
이쯤되면 면접이 아니라 법정에서 심문받는 기분이다.
미국에서라면 이런 질문들은 틀림없는 고소감이다.
가족 친척 연애경험...
도대체 내 "능력"에 대한 질문은 언제 나올까.
"마케팅을 전공했고 컨설팅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2개국어에 자신있습니다"라고 얘기할 기회말이다.
하지만 뒤를 잇는 질문은 정말 기절초풍할 정도다.
"주량이 얼마나 됩니까, "소주 몇병"으로 답하세요"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장난"이 아닌 것이다!
이유를 물으니 한국에선 비즈니스에 술이 빠지지 않기 때문이란다.
세상이 달라도 이렇게 다를까.
미국에선 자신감에 가득찬 태도가 면접의 성공비결이다.
함빡 지은 미소에 후한 점수가 매겨진다.
면접관이 주목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과 경력이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태도가 중요하다.
면접관들이 나보다 "연장자"이기 때문이다.
"나"보다는 배경에 질문의 초점이 맞춰진다.
그래서 가족들이 나의 "한국행"을 말렸나 보다.
이 엄청난 차이들을 극복하지 못하리라는 걱정에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한국식 면접"에 통과했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의 문화에 완전히 익숙해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나의 하루하루는 크고 작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런 "경이"들을 마주칠때 되뇌는 말이 있다.
"서울에선 서울법을"
이것이 바로 낯선 조국생활에 적응해나가는 나의 노하우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