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우에는 필리핀의 루손섬 북부에 자리잡은 산간 마을로 약 1천2백m
고도상에 자리잡고 있다.

주변에 사는 이푸가오 원주민들이 2천년 동안 만들어온 계단식 논이
있어 여행객들에게 상당히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이 계단식 논은 세계 8대 불가사의에 속한다.

또한 산업화된 필리핀에서 여전히 전통적으로 살아가는 대표적인
곳으로 전통적으로 생산되는 민예품을 싸게 구입할수 있는 것도 바나우에
여행의 묘미이다.

계단식 논은 바나우에에서 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바타드 캄불로
방가안 등의 마을에서도 볼수 있다.

계단식 논은 마을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50~70층을 이루고 있다.

가장 밑에 있는것이 가장 오래된 논이며 가장 위쪽의 것이 가장 최근
것이다.

처음에는 물을 사용하기 쉬운 강가에 논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사람이 많아지니까 농토가 부족하게 되었다.

그래서 산사면을 깎아내고 현재의 논보다 더 높은 곳에 또 다른 논을
만들었다.

비가 많이 오는 곳이므로 굳이 강물을 사용하지 않아도 물 관리만 잘하면
논에 충분한 물을 댈수 있었으므로 이러한 방법이 가능했다.

이곳 사람들은 현재도 12월말에 씨를 뿌리고 2월초에서 3월 중순까지
이모를 한다.

그리고 4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 논을 가꾼후 7월에 추수를 하며
8월부터 12월 중순까지는 논의 보수 작업에 힘을 기울인다.

논의 층수로 그 마을의 역사를 알수 있는데 한 세대 (30년)에 한번씩
논의 층수를 높여온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즉 논의 층수가 50층이면 약 1천5백년전부터 그곳에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기 시작한 것이 된다.

바나우에와 그 주변 마을에 있는 논의 길이를 합치면 무려 2만2천4백km나
된다.

이는 적어도 적도를 따라 지구 표면을 끈으로 둘렀을때 반을 두를수 있는
거리이며 만리장성보다 열배나 더 긴 거리가 된다.

보기에는 논 간의 거리가 가까워보이고 둑도 낮아보이지만 실제로
논둑을 따라 걸어보면 둑의 높이에 아찔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고 논둑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길잃기가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마을도 4~5 가구씩 논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큰 길가에 모여살면 논까지 올라가고 내려오고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들 원주민들은 목각 조각품으로 대나무 바구니를 만드는 부업도
하고 있다.

나무로 만든 잔이나 대나무 배낭은 현지의 가정에서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는 물품이다.

바나우에 주변에서 가장 인기있는 계단식 논은 바타드이다.

특히 바타드는 보름달을 전후하여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다.

달빛 아래에서 보는 계단식 논이 가장 환상적이다.

강문근 < 여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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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정보 ]]

필리핀은 비자없이 21일동안 머무를 수 있다.

단 입국할 때 출국 항공편을 제시하여야 한다.

바나우에는 마닐라에서 버스로 9시간 소요되며 바기오에서도 9시간이
소요된다.

마닐라의 쿠바오에 있는 당자 트란코 (Dangwa Tranco)사에서 매일 아침
7시30분 에어컨 버스가 출발한다.

지정좌석제이고 표는 당일 오전6시30분부터 판매한다.

이 버스가 다음날 오전7시 다시 마닐라를 향해 출발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루손섬 북부를 마닐라->바나우에->본톡
->사가다->바기오->마닐라 순으로 5일~1주일 정도 여행하는 것이
무난하다.

바나우에의 계단식 논을 걸어서 구경할 수 있으며 계단식 논이 가장
잘보이는 전망대까지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트라이스클의 이용이 가능하다.

바타드와 캄불로를 여행하려면 지프니를 전세내어야 한다.

숙소에 항상 이곳에 가려는 여행 친구들이 있으므로 요금을 나누어
지불하면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

바타드에서 자고올 사람은 비정기적으로 운행되는 지프니를 알아봐야하며
바타드에도 시설을 열악하지만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바나우에에 관한 정보는 검색사이트인 알타비스타 (http://www/
altavista.digital.com/)에 들어가서 banaue를 입력하면 1백개 이상의
관련 사이트가 나타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