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의 백미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뒤 특별한 경우
그 말미에 적어넣은 사관의 촌평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인물평은 압권이라 할만하다.

"연현남 봉서방"이야기도 그중의 하나다.

문종때 곡산부원군 연사종의 아들 연경과 찬성 곽추의 사위 봉안국은
아버지와 장인의 덕으로 임금의 특은을 입어 벼슬을 한 인물들이다.

그들이 임금을 알현했다.

임금이 "네가 누구냐"고 묻자 연경은 "곡산군의 현남입니다"라고 했고,
봉안국은 "찬성의 서방입니다"고 한데서 연유해 무식한 사람을 조롱조로
부르던 별칭이 "연현남 봉서방"이다.

학문과 견식이 없어 "현남"이나 "서방"이라는 말조차 존칭인 줄도
몰랐던 인물들이 관직에 오른 것을 비웃는 사관의 이런 인물평은 "실록"에
적어놓지 않았다면 아마 영원히 알려지지 않았을 이야기다.

연산조에 오면 임금의 친인척이나 임금과 친근한 고관들이 양산된다.

통정대부 (정3품)이상인 자가 1백여명, 가선대부 (종2품)이상인 자가
70명이나 됐을 정도로 관작이 범람했다.

왕비의 오라비에서부터 왕의 유모 아들에 이르기까지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도 "부차지은"을 입어 높은 관직에 기용됐다.

어느 것이 서까래 재목이고 어느 것이 대들보 재목인지는 가리지도
않았다.

"특은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권세가 아랫사람에게 있고, 인군은 자리나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인들 특은이 없었겠는가"대간들이 반대상소를 올리면 연산군은
이렇게 당당하게 말했다고 기록돼 있다.

최근 탤런트 박규채씨가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것을 놓고
대통령이 어려웠던 시절의 동지에게 특은을 내린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탤런트라고 해서 공직을 못맡을 이유는 없다.

영진공 사장은 문체부 퇴역관료만이 맡아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설령 대통령이 이런 "열린 마음"으로 단행한 인사였다고 해도
공사 내부의 반발이 거센 것을 보면 썩 잘한 인사는 못되는 것 같다.

사람을 위해 자리를 만들어서는 안되고 자리에 맞는 사람을 앉혀야
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사의 기본원칙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