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그룹 뒤처리는 그 파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새 시대가 요구하는 부실기업정리 형식과 절차를 정립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부실기업정리는 그때그때의 정치상황에 따라 원칙없이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고,이로 인해 특혜시비가 끝없이 이어지는등 사회적 비용을
극대화시키는 측면이 결코 없지 않았다.

우리는 제일은행등 관련은행들이 한보를 부도처리, 담보권을 실행하는
형식으로 정리절차에 들어간 것은 잘한 일이라고 우선 평가하고 싶다.

부도율이 치솟는등 "충격"이 표면화하는 것을 꺼려 부도를 내지 않고
물밑에서 정리절차를 밟았기 때문에 빚어진 숱한 비논리를 되풀이하는 것은
그 누구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공권력의 위협때문에 포기각서에 도장을 찍었다는 등의 시비가
후일에라도 재연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또 도장을 찍는 조건으로
부실기업주가 한 몫을 챙기는 비리를 막기 위해서도 부도처리-담보권실행
절차를 밟는 것이 떳떳하다.

앞으로 다른 부실기업정리도 <>그 소유주가 직접 제3자에게 자발적으로
주식을 넘기거나 <>사전에 주거래은행에 M&A(기업 인수.합병)의뢰를
해오지 않는한 동일한 절차를 밟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러나 관리단파견등 부도처리와 동시에 이루어졌어야 할 사후대책에
극히 소홀했다는 점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상업적인 판단에서 부도처리,담보권행사에 들어간다면 자산유출을 막기
위한 관리단의 즉각적인 경영권장악은 기본적인 상식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이번 한보 부도처리는 그것이 옳은 결정인 것은
분명하지만 과연 관련은행들의 자율적인 결정이었는지 의심이 가기도 한다.

한보뒤처리도 그래야겠지만,앞으로 다른 부실기업정리가 합당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도 은행이 자율과 책임에 대한 의식을 확고히 해야할
필요가 있다.

담보권행사후 제3자에게 넘겨 경영을 정상화하기까지의 기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한보철강처럼 엄청난 자금이 투입된 거대기업 경영을 은행관리단에서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보면 제3자인수에 앞선 위탁경영은 사실상
불가피하다.

이 경우 맡을수 있는 곳은 이미 거론되고 있는대로 포항제철밖에는 없을
것이다.

제철소를 완공해 시운전할 때까지 포항제철에 맡기되 추가소요자금의
조달 등을 위해서는 은행에서 자금관리단을 상주시켜야 할 것이다.

산업합리화업체지정 등은 지금 서둘러 결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회사재산보전을 위해 법정관리절차를 빨리 진행하는 것은 설득력이
있지만, 인수에 따른 세제혜택을 위한 합리화업체지정은 충분히 따져본
뒤에 하더라도 늦지 않다.

그보다 서둘러야 할 것은 최근 1,2년새 수조원의 은행돈을 한보에
쏟아부은 경위를 명백히 가려내고 숨겨진 자산까지 찾아내 담보권을
철저히 행사하는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