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 남편에게 가끔 폭행도 당했지요?"

"네,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무당 같으시네"

박춘희는 친구를 만난듯 반색을 한다.

"저 인간이 이제는 나를 알콜중독자로 몰아서 이혼을 하고 싶은 거유"

그녀는 또 뚝 부러지는 소리를 한다.

"내가 미워서 그라요.

내가 차라리 죽어 없어져야 어떤 년을 들여 앉힐건데. 술요? 나 그거
써서 별로 안 좋아해요.

그냥 많이 마시는척 하지요.

다 큰 자식들허고 네가 나를 그렇게 버리고 살 수 있는가, 정신 좀
차리라고 가끔 정 속터지면 마시긴 마셔요.

그러나 알콜중독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핑계대고 내가 알콜중독자라고 이유를 대서 이혼을 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야 양귀비 같은 젊은 년하고 살 수 있지요.

요새 역삼동땅을 팔았거든요.

그걸 노리고 그년이 남편을 들볶는 거라"

"그 여자를 아십니까?"

"몰라요. 그냥 육감이어유"

의부증은 아닐까? 공박사는 오히려 그녀를 의심해본다.

그런 케이스도 많으니까 말이다.

"확증을 가지고 말해야지요.

확실히 어떤 여자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고통을 받는 여자도
있어요. 의부증이란 것이지요"

그 순간 그녀는 벌떡 일어서면서, "선상님, 우리 그이에게서 와이로
먹었어요? 갑자기 사람 잡는 소리 하시네"

극기력이 파괴된것 같은 행동을 한다.

그리고 테이블을 꽝꽝 두드리면서 난폭하게 내닫는다.

"이봐요, 선상님. 사람 좀 똑바로 보고 진단하시라우요.

이 박춘희의 눈치가 바로 어떤 정도인데. 이거 정 사람 잘 못 봐도
에지간히 엉터리 여의사시구먼. 여자는 남자의 냄새로 남편의 바람기를
아는 거요. 것도 몰라요?"

공박사는 갑자기 공격을 당하자, 너무나 기분이 나빠진다.

그러나 그녀는 깊이 심호흡을 하면서 눈을 감고 고통을 이겨낸다.

"박춘희 여사님, 나는 여잡니다.

우리나라 남편들 쩍 하면 여자 치고, 바람피우면서 호령하는것 잘
압니다.

공연히 의사에게 적의를 가지지 말고 차분하게 이야기 합시다"

공박사는 그녀의 유난히 큰 손을 꼭 마주잡아주며 부드럽게 웃어준다.

박춘희는 일종의 피해망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편에게 여자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지요?"

"그 남자는 왼손이 하는 일을 바른손이 모르게 하는 사람입니다.

내손이 왜 이렇게 큰지 아십니까? 선천적인 것도 있겠지만 열여덟에
시집와서 이 압구정동에서 아이낳고 배추밭 무밭 매구, 배밭 3천평을
나 혼자서 해냈다구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