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한보철강그룹회장은 빌려쓴 돈의 액수만큼 씀씀이도 대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점심값으로 주는 봉투도 보통의 경우보다는 끝에 0이 하나 더 붙어있는게
통례라고 알려져 있을 정도.

과거 비자금사건이나 수서사건때 드러난 뇌물의 크기로 보아도 어느정도
인지 규모를 알 수 있다.

한마디로 "큰 손"이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돈을 주었을까.

규모는 알 수 없지만 가지고 다닐 경우의 부피부담이나 나중의 자금추적
까지 고려해 독특한 수법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수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는게 정설이다.

사용방법은 대개 세가지로 알려져 있다.

가장 유력한 수법이 어음을 통한 대규모 현금제공이다.

이 방법은 한보측이 발행한 어음을 정치인 등에게 주고 할인을 해줄 사채
업자를 엮어주는 식이다.

그리고 사채업자는 자신이 배서인 및 의뢰인이 돼 이를 종금사나 할부
금융사 등에서 할인을 해간다.

사채업자는 정치인에게 현금다발을 주어도 별문제가 없고 자금추적조사가
들어오면 잠적하면 그만이다.

검찰도 최근 이런 방식에 주목을 하고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식이 수표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수표는 전달할 때마다 계속 배서를 해야만 하고 거래기록이 금융기관의
마이크로필름에 모두 남기 때문에 추적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어음은 이를 받은 정치인도 할인한 뒤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고 할인을 해준 사채업자도 책임을 물을 근거가 없어 별문제가 없다.

두번째 방법은 뇌물을 줄 때 "차명통장"을 썼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게
정설이다.

남의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도장과 비밀번호를 넘겨주는 방법이다.

실명제가 실시됐기 때문에 이 방법으로 썼다면 아마도 임직원이외의 3자
명의를 빌린 차명통장을 건네줬을 것으로 보인다.

한보관계자와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의 명의를 쓸 경우 나중에 전혀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통장은 일시에 돈을 찾은 뒤 폐쇄해버리면 아예 흔적까지 사라지게 된다.

이와함께 달러로 전달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현금을 줄 경우 돈의 액수가 큰 만큼 부피가 커지기 때문에 전달하기가
불편한 점을 피하기 위해서다.

장당 현금으로 줄 수 있는 최고금액이 1백달러(약 8만5천원)이기 때문에
부피를 줄일 수 있다는 것.

더욱이 지폐의 크기도 원화보다 작아 부피를 최고 10분의 1일까지 줄일 수
있어 "운반"에는 최적수단이 된다는 얘기다.

현금과 똑같아 추적을 당할 염려도 물론 없다.

다만 이 방법은 달러를 구하거나 원화로 바꾸기 위해 은행을 이용해야
하고 암달러시장을 들락거리는 것도 간단치 않아 자주 쓰이지는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

< 안상욱.오광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