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전 백낙청교수 자택 설계를 맡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본 인간의 문제만 쏠려있다는
문제제기에서 출발한 당시의 토론은 함께사는 인간공동체에 대한 보다많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공감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때 백교수로부터 인간공동체가 결국 건축과 도시와 문명의 형태로
외화된다는 점에서 공학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이를 글로
써보라는 권유를 받게됐고 이것이 지금까지 부채로 남아있었던 셈입니다"

우리시대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는 김석철아키반도시연구소소대표(54)가
30년가까운 세월동안 건축을 하면서 느낀 모든 이야기를 한데모은 "천년의
도시 천년의 건축"(해냄간)을 펴내 화제다.

이 책은 단순히 한 건축공학 전문가의 회고록이 아니라 튼튼한 공학적
지식과 인문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토대로 현시대 우리사회, 나아가
우리 인간공동체의 자화상을 돌아보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가 있다.

"우리 사회의 실패는 도시화과정의 실패입니다.

5백만명이 거주하는 서울 강북의 공공공간은 조선시대에 마련한 것이
전부이고, 역시 500만 인구를 가진 서울 강남지역은 3공화국 당시에
도시인프라로 구비한 도로와 공원이외의 공유공간이 없습니다.

도시에는 그 규모에 걸맞는 사유공간과 공유공간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서울은 거대한 인스턴트 도시이자 난민촌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예루살렘 모스크바 로마등 "천년의 도시"의 전제조건으로 절대적인
공유공간 확보를 역설하는 김대표는 우리의 건축과 도시가 그들에 비해
지금은 비록 많이 뒤떨어져 있지만 과거에도 뒤처진 것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 천년도시들와 같은 시기에 경주가 있었습니다.

험난했던 역사속에서 지금은 폐허된 모습으로 변했지만, 아직 경주에는
세계 어디를 다녀도 볼 수 없는 자연과 참으로 아름다운 고분군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토록 강력하게 경부고속철도의 경주도심통과를 반대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앞으로 베니스대학과 연계해 천년도시 경주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해
볼 계획입니다"

총7부로 구성된 "천년의 도시 천년의 건축"에는 어린시절 이야기로부터
건축가의 길을 걷는 과정, 크노소스 이스탄불 예루살렘등 인류역사가
계속되는 동안 살아남게 될 천년도시를 보면서 느낀 점이 담겨있다.

또 중동 유럽등의 도시에 대한 기행감상기와 저자가 참여했던 해외작업들과
건축설계에 얽힌 이야기,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의 재편을 주장하는 이른바
"꿈꾸는 한강"론등이 실려있다.

20년넘게 백낙청교수에게 진 빚을 청산할 본격적인 건축기행기"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창작과비평사간)은 2월말께 출간될 예정이라는 김대표는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으며 예술의전당,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국립예술종합학교, 제주영화박물관등을 건축했다.

<김수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