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에 대한 소환으로 한보그룹 특혜대출 의혹사건
은 검찰의 수사 착수 3일만에 중대한 분수령을 맞게 됐다.

당초 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총회장은 금융권 인사들에 이어
주말께나 검찰청사에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측됐었다.

그러나 검찰은 정총회장을 그대로 병원에 방치해 둘 경우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가 생길수 있고 "속전속결" 원칙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
우회로보다는 지름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한보그룹의 자금 실무를 관장해온 김종국 전재정본부장을 중심으로
펼쳐진 지난 이틀간의 초동수사에서도 이번 사건의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는
"단초"를 잡았다는 자신감의 표출이기도 하다.

이는 현재 표면적으로 드러난 혐의를 중심으로 정총회장의 목을 조른 뒤
특혜금융과 정치권의 외압으로 요약되는 "배후"를 캐 나간다는 수순이다.

최병국 중수부장은 수사방향에 대해 "부정수표단속법이나 상호신용금고법과
같은 고발사건을 중심으로 정총회장을 조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자금"
조성부분에 대해서도 맥이 닿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볼 때 검찰은 우선 한보그룹 3개 계열사의 2천4백20억 부도에 대한
정씨의 개입여부를 규명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적용할 수 있는 죄목은 <>부도시 자동적으로적용되는 부정수표
단속법 위반 <>부도직전변제능력이 없는데도 융통어음등을 남발했다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사기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시설자금을
기업인수등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 경우에 적용가능한 횡령죄등 3가지.

이와함께 출자자 대출금지 규정을 어기고 한보신용금고가 출자자인
한보철강에 돈을 빌려준 신용금고관리법위반건도 1단계 조사대상이다.

검찰은 사전 자료와 한보및 은행관계자등에 대한 조사결과 정총회장에게
이들 죄목을 적용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정수표 단속법 위반건을 예로 든다면 이미 한보철강을 상대로 4건의
고발이 접수돼 있는데다 정총회장이 실질적인 경영주임을 쉽사리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중 횡령부분에 특히 주목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총회장이 제철소를 짓겠다면서 끌어 쓴 돈을 기업의 문어발식 확장등에
사용했다면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고 또 이를 통해 그를 압박해
들어갈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그러나 이같은 정도의 혐의는 이번 사건에 있어서 "잽"에 불과한 것이다.

검찰이 "어퍼커트"를 날려야 할 이번 사건의 급소는 5조원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의 시설자금 대출 경위이다.

한보가 이처럼 엄청난 돈을 빨아들이게된데에 과연 "정-관-금 커넥션"의
마력이 작용했는지 여부가 이번 수사의 관건인 것이다.

하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이 부분은 검찰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정총회장이 호락호락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정설이
돼버린데다 검찰이 다뤄야 할 자금 규모도 워낙 덩치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은 정총회장의 입에 채워진 "자물쇠"를 푸는데 최대한 주력하는
한편 30일부터 시작된 은행감독원의 5개 은행에 대한 특별감사와 보조를
맞추는등 "전방위" 수사방식을 구사할 방침이다.

특히 은감원이 <>한보철강의 사업계획 <>대출 건별로 절차상 문제 <>대출
자금의 실제사용처등 대출관련 비리를 집중조사 하고 있는 만큼 잘하면
"빼도박도" 못하게 하는 물증확보도 가능하다는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이와함께 이날 보석허가 취소에 따라 재수감된 이철수 전제일은행장과
이형구 전산업은행총재등 핵심 금융권 인사들의 연쇄소환, 과거 수사파일의
십분 활용등을 통해 가능한 빨리 사건의 본류에 도착할 방침이다.

이와관련, "정총회장의 소환과 함께 모든 것이 예상보다 빨리 진행될 수
있다"는 검찰관계자의 말은 "데드라인은 임시국회전까지" 방침을 재확인해
주는 것이다.

< 윤성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