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의 총파업사태에 뒤이어 한보그룹의 부도파문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부도사건이 터져 국내 컴퓨터업계가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싱가포르 제1의 정보통신기업인 IPC사가 95% 이상의 지분을 갖고
지난 92년에 출범한 한국IPC가 부도를 내 3백개 여러개사의 거래업체들이
적어도 1천억원 이상의 피해를 입게된 것이다.

부도를 내게된 정확한 경위는 좀더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만 적어도
세가지 문제는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것 같다.

하나는 미래의 성장산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컴퓨터를 비롯한
정보기기시장의 유통질서가 매우 혼탁하다는 점이다.

영세한 유통및 조립업체가 난립해 이른바 "가격파괴"라는 지나친
가격경쟁을 벌이다 쓰러지는 일이 잦아 거래 업체는 물론 일반소비자에게
까지 피해를 주고 산업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뿐만아니라 탈세를 목적으로 한 편법거래의 만연, 어음거래로 인한
자금압박의 심화, 비효율적으로 복잡다단한 유통망 등의 문제점까지
겹쳐 연쇄부도가 일어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정보산업의 성장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도 정보기기시장의
유통질서정비는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또 한가지는 경영환경에 대한 치밀한 분석도 없는 주먹구구식 경영방식및
무리한 기업확장이 관련산업,나아가 국민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한국IPC도 브랜드 없는 저가조립품 위주로 시장점유율 확대전략을 펴
처음에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국내경제가 불경기에 빠지면서 곧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POS(판매시점 관리) 기기에서 PC(개인용컴퓨터), 나아가
중형컴퓨터서버로 사업영역을 계속 확장해 문제를 악화시켰다.

게다가 경영을 책임진 김태호 회장의 전횡및 싱가포르 본사와의
마찰때문에 더욱더 문제해결이 어렵게 되고 몰락을 재촉했다고 할
수 있다.

끝으로 피해업체에 대한 보상등 사후수습과 관련해 신속하고 공정한
처리가 요구된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불경기에 한보그룹의 부도까지 겹쳐 그렇지 않아도 어음부도율이
치솟고 제품판매도 위축되고 있는데 업계의 연쇄부도까지 일어날 판이니
관련 업체로서는 보통 걱정이 아니다.

게다가 싱가포르 IPC본사의 한국내 또다른 계열사인 PC&C사로 재산이
빼돌려졌다는 의혹도 있어 IPC본사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도 밝혀져야 한다.

특히 이 문제는 국내 시장개방과 함께 외국기업의 진출이 늘어날수록
비슷한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돼 귀추가 주목된다고 하겠다.

한보건, 한국IPC건 부도사태는 경영능력이 없는 기업주가 무리한
경영을 계속한 끝에 문제가 터져 나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비슷한 사태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도록 힘쓰는
일 뿐이다.

이제는 기술, 영업망, 재무구조 등 어느 한나라도 심각한 허점이 있으면
살아 남을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