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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용재 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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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현은 조선초기의 학자로 호는 용재 허백당 또는 부휴자 등을 사용했다.

    그의 저서로 "허백당집" "용재총화" "부휴자담론" 등이 있지만 1493년
    성종의 명으로 편찬한 "악학궤범"으로 유명하다.

    문체부가 "2월의 문화인물"로 성현을 선정한 까닭은 "악학궤범" 편찬의
    공로를 기리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성현은 1439년 (세종21) 아버지 념조와 어머니 순흥 안씨의 3남으로
    태어났다.

    부친 염조는 지중추부사까지 지냈으나 그가 12세때 별세해 학문적
    정신적 성장엔 형들의 영향이 컸다.

    1462년 (세조8) 23세로 식년문과, 1466년 27세로 발영시에 각각 3등으로
    급제해 박사로 등용됐고 1468년 (예종 즉위년) 29세로 경연관이 된다.

    1474년 (성종5)에 성균직강이 됐고 이듬해 한명회를 따라 중국 북경을
    다녀온 뒤 1476년 문과중시 병과에 급제해 대사간 등을 지냈다.

    용재는 1488년 평안도 관찰사 대사헌을 거쳐 1493년에 경상도 관찰사로
    나갔다.

    그러나 그는 음률에 정통해 장악원제조를 겸하고 있었으므로 외직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달만에 예조판서로 제수된다.

    그해 성현은 장악원제조 류자광, 장악원주부 신말평, 전악 김복근 등과
    당시의 음악을 집대성한 "악학궤범" 9권 3책을 편찬했다.

    당시 장악원에 있던 의궤(의궤)와 악보는 오래되어 헐었고 요행히 남은
    것들도 모두 소략하고 틀려서 그것을 정리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악규책을
    편찬하게 된 것이다.

    특히 "악학궤범" 권5에는 한글로 "정읍" "동동" "처용가" "진작" 등의
    노래가 적혀 있다.

    "정읍"과 "동동"의 가사는 "대악후보"나 "악장가사"에도 없고 오직
    "악학궤범"에만 있는 노래여서 국문학적으로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 성종의 명으로 고려가사중 "쌍화점" "이상곡" "북전"의 표현이
    음란하다해 고쳐 쓰기도 했다.

    성현은 연산군 즉위후 한성부판윤을 거쳐 공조판서가 됐고 대제학을
    겸임했었다.

    1504년 (연산10) 성현이 죽은 뒤 수개월만에 갑자사화가 일어나
    부관참시를 당했으나 뒤에 신원되었고 청백리에 녹선되기도 했다.

    시호는 문재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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