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져 주겠다고 자꾸
으름장 놓지 말아라
없어져 주겠다고 벼르지 않아도
날마다 마음은 줄어 가는 것 아니냐
새잎 돋을 때의 싸한 황홀
이제는 졸아붙어 줄기마다
쭈글쭈글 매달려 있지 않느냐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그래, 결국 이렇게 되고 만 것 아니냐
그러니 풋내 나는 으름장은 잠시 거두고
오늘은 잘 가라앉은 시간을 빌려 다오
담쟁이덩굴 남은 뼈대를 거두어 주며
우리 한 겹 옷을 서로 입혀 드리자
추운 빗물 으스스 스며들지 못하게시리
꼼꼼히 지은 따뜻한 한 겹 옷.

시집 "안개 편지"에서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