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그룹의 부도과정은 시쳇말로 "외상고스톱"판이었다는 말이 시중에
돈다.

"따면 내돈이요 잃으면 외상처리"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는 것.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은 은행 등 금융기관을 상대로 고스톱을 쳤다.

처음 몇 판을 땄다.

당연히 돈을 챙겼다.

문제는 정총회장은 졌을때 돈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면 갚을테니 봐주세요"라며 떼를 썼다.

딴 돈은 이미 직원들을 통해 밖으로 빼돌린 뒤였다.

유용자금으로 문어발식으로 이것저것 사들였다.

금융기관들은 정씨에게 돈을 달라고 강력하게 항의할 형편도 못됐다.

그럴 때마다 "그러면 그만둘래, 외상값 받을려면 계속 치자구"라고 정씨가
배짱을 퉁겼기 때문.

"세상에 정태수씨처럼 외상고스톱을 치면 따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일반인들은 정총회장이 한보철강만 자본금 9백억원의 50배가 넘는 5조원대의
차입금을 끌어쓴 것을 놓고 흥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1년에 1천5백개 정도의 업체가 부도로 쓰러진다.

이중에는 몇백만원을 구하지 못하지 못해 부정수표 단속법으로 차가운 감옥
신세를 지는 "영세부도"가 부지기수다.

반면 천문학적인 돈을 끌어다 개인재산으로 몰래 숨겨놓고 "나를 쓰러뜨리면
모두 죽는다"며 협박을 하는 "배짱튀기기" 부도도 있다.

이같은 철면피형 부도에 굳이 서열을 매긴다면 한보그룹은 다섯 손가락안에
낄 것이다.

일부 부도기업 경영주의 한심한 윤리수준이 대다수 기업인들의 기업가
정신을 먹칠하고 있다.

작년 3월 법정관리상태에서 법원의 허가를 받지 않고 3백억원의 불법융통
어음을 발행한 서주산업.

법정관리중에 또다시 부도를 낸 논노.

공인회계사와 유착해 분식결산을 한 신정제지 한국강관 흥양 영원통신
영태전자 등.

"기업의 윤리의식"을 강조한 2백년전 시장경제론자 애덤 스미스의 말을
무색케 한 반윤리적 기업리스트다.

<정구학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