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도로 추진돼온 다국간 "정보기술협정"(ITA)이 완전 타결됐다는
소식은 아직 국제경쟁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국내 정보통신기술산업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지난달말 제네바에서 열린 ITA회의는 2000년까지 4단계에 걸쳐 컴퓨터
하드웨어및 소프트웨어 반도체 통신기기등 2백2개품목의 관세를
완전철폐하기로 최종합의했다.

지난해 11월 마닐라 APEC(아-태경제협력체)회의와 12월의 싱가포르
WTO(세계무역기구)각료회의에서 한국을 비롯한 28개국간에 잠정합의가
이루어진 이 협정은 이번 제네바회의에서 세부사항이 확정됨으로써
본격적인 정보기술산업의 무한경쟁시대를 열게 된 셈이다.

비록 협정 참여국은 28개국에 불과하지만 이들 국가의 정보기술제품
교역량이 세계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 정보기술
제품교역은 사실상 완전한 무관세화를 이룩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ITA 구상은 원래 미국 통신기기의 대아시아시장을 활짝 열어 젖히기
위해 클린턴 행정부가 내놓은 강대국 위주의 논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정보통신 분야의 관세철폐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어느 특정국가에만
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21세기 통신대국을 지향하는 우리나라로서는 당장은 국내 관련산업에
미칠 충격이 작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 정보기술산업의 자생력을
키워 "통신자립"을 앞당기는 기회로 활용될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정보기술 교역규모는 세계교역량(약 1조달러)의
5%인 5백억달러에 이르고 있으며 반도체수출에 힘입어 약 1백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같은 흑자가 ITA 협정타결로 줄어들거나 적자로
반전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이미 96년부터 관세를 폐지했고, 반도체는
99년부터 관세를 완전히 없앤다는 계획하에 대비해왔기 때문에 정보기술
주력제품은 큰 충격을 피할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우리의 주력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시장잠재력이 커지는 이익을
누릴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걸음마단계인 컴퓨터와 통신기기 분야이다.

우리 정부는 이번 제네바회의에서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술이
뒤진 컴퓨터 송신기기 인쇄회로등 10개 품목에 대해서는 2~4년간 무관세
이행을 유예받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만 정보기술제품의 핵심기술은 아직도 대부분 외국 업체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들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첨단기술 개발 없이는 대외기술
종속이 더욱 가속화될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부와 업계는 정보통신기기 교역의 무관세화에 따르는 이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부작용은 최소화하기 위해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