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국민회의 권노갑의원의 1억5천만원 수수 시인과 신한국당 홍인길
의원의 7억원 수수의혹은 한보 사건을 풀어가는 검찰 수사의 폭과 깊이를
가늠케 하는 것이다.

이 두의원은 각각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국민회의총재로 대표되는
상도동계와 동교동계의 최측근 가신들이다.

따라서 검찰이 수사 착수 10일만에 이 정도급 인물들까지 건져 올려
냈다고 볼때 앞으로 그 윗선까지도 얼마든지 헤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향후 파장은 일파를 넘어서 만파로 번질 전망이다.

검찰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정치권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된데는
정태수 총회장의 입이 결정적인 힘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정총회장이 이유야 어찌됐든 돈을 줬다고 털어놓은 정-관계 고위인사는
현재까지 대략 40명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30여명의 여.야 정치인과 10여명의 전.현직 고위공무원에게 명절이나
선거철에 "떡값"명목으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건넸다는 것이 정총회장
진술의 "아웃라인"이다.

게다가 "지난 4일밤부터는 관련 인사들의 구체적인 이름까지 하나씩 불어
주고 있다"는 것이 검찰관계자의 전언이다.

권.홍 두의원은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이름이 일치감치 흘러나온 케이스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 종합하면 검찰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수사파일은 당장이라도 정관계
VIP 소환에 착수할 수 있을 만큼 광범위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또 일부 권.홍의원에 대한 언론보도가 검찰로 하여금 단김에 쇠뿔을
빼도록 부추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이 이같은 요인만으로 당초 설정해 놓은 한보-금융계-관계-
정계로 이어지는 수사 수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 같지는 않다.

5일 권.홍의원의 금품수수가 포착됐다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검찰
수뇌부는 뒤통수를 맞은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확인된 바 없다" "보도
자체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신중한 대응자세를 견지했다.

따라서 검찰의 향후 수사 템포는 당초 방침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주변상황을 봐가며 완급을 조절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듯하다.

우선 주말까지 금융권 수사를 마친 뒤 설연후 직후부터 공직자 소환에
나설 전망이다.

물론 권.홍의원은 이 과정에서 공무원들과 함께 소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두의원의 소환이 관계를 제쳐둔채 정치권 수사로
훌쩍 뛰어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현재 대대적인 계좌수색 등을 통해 정총회장의 비자금 내역을
충분히 확보해 정치인 조사에 주소재로 활용할 계획이다.

정치인이 받은 돈이 단순히 후원금조인지, 아니면 대가성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돈이 들락날락한 시기쯤은 확인해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윤성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