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상자는 뇌물상자인가"

사과상자가 거액의 뇌물사건마다 등장하고 있다.

돈을 은밀하게 건네는 수단으로 애용되고 있는 것.

5일 검찰에 구속된 신광식.우찬목 두 시중은행장은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으로 부터 돈이 든 사과상자를 두개씩 받고 구속됐다.

작년에 대출비리사건으로 구속됐던 손홍균 전서울은행장도 사과상자
한개 때문에 당했다.

뇌물로 받은 것은 아니지만 신한국당 김석원의원은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을 사과상자 25개에 담아 회사창고에 보관했었다.

이처럼 사과상자가 냄새나는 큰 돈 거래에 애용되는 이유는 눈에
띄지않으면서도 많은 돈을 한꺼번에 담을 수 있다는 점 때문.사과상자
한개에 1만원짜리 신권을 넣을 경우 최대 2억4천만원 정도를 담을 수
있다.

실명제 이후 수표가 뇌물로서 환영받지 못하자 사과상자가 현금운반용
도구로 각광받게 됐다.

여기에다 특별하게 남들의 주의를 끌만큼 튀지 않고 운반도 쉽다.

이번에 구속된 신행장이 자신의 아파트앞에서 돈이 든 사과박스를
건네받았다는 데서도 사과상자의 효용성을 엿볼 수 있다.

2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있지만 그안에 사과가 아닌 다른 물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사과상자가 뇌물사건에서 이처럼 필수품으로 사용되다 보니 현금을
넣는 방법도 날마다 진일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바닥에 사과를 깔고 스티로폴로 덮은 다음 그 위에 돈을 담고
다시 사과를 얹는 위장술도 등장했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 조주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