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접대비와 세금 .. 곽태원 <서강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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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사건들이 우리 경제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에 접대비 문제는 아주
사소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경제의 경쟁력저하를 가져오는 꽤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이
문제를 부각시키는 일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기업들이 기술과 품질, 그리고 가격 신용 등을 가지고 정정당당하게
경쟁을 하지 않고 힘센 인맥을 찾아 "약을 잘 쓰기" 경쟁을 하다보면
경제가 잘 될리 없다.
이런 경쟁에서 당장은 누군가가 이기는 것 같아도 결국 그 경제전체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그러한 경쟁을 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품질향상과 원가절감에 모든 경쟁
역량을 집중시키는 다른 경제와 비교해 보면 이 경제내의 모든 기업이
패하는 자가 되는 것임을 바로 알 수 있다.
투서나 모함이 난무하고, 법대로 했다고 해도 항상 억울해서 못사는
사람들이 나오고, 인맥이 든든한 일류고등학교 일류대학 클럽의 회원이 되기
위해 어린 나이에서부터 목숨을 거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것은 다 이러한
"불공정 경쟁"과 관계가 있다.
이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 이외에도 과도한 접대의 크고 작은 병폐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기업이나 정부의 귀중한 인재들은 휴식할 시간도 없이 먹고 마시는 일에
정력을 낭비하니까 항상 몽롱하고 피곤한 상태에서 업무를 하게 된다.
폭탄주가 위 속에서 수시로 폭발하니 위장 간장이 견딜 수가 없다.
뱀이나 곰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접대문화와 상관이 있다.
개인이 파괴되면 가정도 파괴되고 궁극적으로는 기업이나 사회까지 무너져
내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마약만 무서운 것이 아니다.
사치 방탕이 업무란 이름으로 강요되고 또 업무를 빙자하여 자행되는 것은
국제수지나 경제성장 같은 고상한 이야기 이전에 우리사회와 국가의 기반을
푸석푸석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풍조, 이러한 문화, 그리고 날로 번성하는 이 분야의 "산업"들은
우리의 젊은이들까지 망가뜨리고 있다.
과도한 접대의 문제는 우리의 먹고 마시는 문화와도 관계가 있다.
먹고 마시는 인심이 한국처럼 후한 나라도 드문 것 같다.
친구들끼리 저녁을 먹어도 그 중 한사람이 음식값을 전부 계산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특히 손님을 접대할 때는 분수에 지나치게 해야 도리인 것으로 생각한다.
부모님의 회갑이나 칠순잔치를 할 때는 빚을 지더라도 "남부끄럽지 않게"
해야 효도를 한 것으로 생각한다.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시킬 때도 사람수에 비해 좀 과하게, 그리고 될 수
있는데로 비싼 것으로 시켜야 체면이 선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도한 접대가 이처럼 문제를 일으키는 우리의 "병폐"가 된데는
정부의 과다한 규제, 기업간 거래에 있어서의 불공정 경쟁요인 등의 책임이
절대적으로 크다.
이러한 제도적 또는 관행적 요인들 때문에 접대나 금품제공같은
비정상적인 방법에 의한 경쟁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접대문제는 이미 굵은 뿌리가 우리사회에 깊게 내려져 있고 잔 뿌리들이
얽히고 설켜 단칼에 베어버리거나 단번에 뽑아버리는 식의 해결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단계적으로 대응한다고 해도 어디서 부터 손을 써야 할지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럴 때는 손 닿는 데서 부터 손을 쓰는 것이 상책이다.
문화나 전통을 너무 많이 이야기하면 되는 일이 없다.
정부 규제의 과감한 완화 및 합리화와 정부조직의 실질적인 축소가 어떤
경우에라도 가장 중요한 대 전제가 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조세정책의 측면에서도 이 문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다행히 최근 기업의 접대비 손비처리 문제에 관심을 갖는 젊은 학자들이
나타나서 기대를 갖게 한다.
여러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을 제기할 수 있지만 접대비 손비처리 한도를
과감하게 줄이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것은 접대비를 금지한다는 뜻이 아니다.
접대를 하되 세금은 부담하라는 이야기이다.
과도한 접대는 기업의 비용이라기 보다는 기업이윤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이전처분 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응분의 세금을 부담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
정상적인 업무의 성격을 갖는 접대활동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서 세무상
접대비로 비용처리될 수 있는 지출의 내용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접대를 받는 사람의 인적사항을 분명하게 밝히는 경우에만 접대비로
인정해주는 제도가 하루 빨리 도입되어야 한다.
기업의 접대비뿐 아니라 공공부문의 예산에서도 회의비나 업무추진비
판공비 등의 지출명세가 보다 분명하게 밝혀지도록 제도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일은 매우 번거롭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 기업이나 부서의
생산성을 오히려 단기적으로 떨어뜨리는 효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접대비를 빙자한 부패를 저지하는 궁여지책으로 이러한 방법이라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장치의 도입도 잘못하면 금융실명제처럼 번거롭기만 한
빈수레가 될 수도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도 그럴 듯한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일단은 당국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사실 금융실명제만 원 취지대로 실시되었다면 접대비는 문제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0일자).
사소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경제의 경쟁력저하를 가져오는 꽤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이
문제를 부각시키는 일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기업들이 기술과 품질, 그리고 가격 신용 등을 가지고 정정당당하게
경쟁을 하지 않고 힘센 인맥을 찾아 "약을 잘 쓰기" 경쟁을 하다보면
경제가 잘 될리 없다.
이런 경쟁에서 당장은 누군가가 이기는 것 같아도 결국 그 경제전체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그러한 경쟁을 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품질향상과 원가절감에 모든 경쟁
역량을 집중시키는 다른 경제와 비교해 보면 이 경제내의 모든 기업이
패하는 자가 되는 것임을 바로 알 수 있다.
투서나 모함이 난무하고, 법대로 했다고 해도 항상 억울해서 못사는
사람들이 나오고, 인맥이 든든한 일류고등학교 일류대학 클럽의 회원이 되기
위해 어린 나이에서부터 목숨을 거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것은 다 이러한
"불공정 경쟁"과 관계가 있다.
이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 이외에도 과도한 접대의 크고 작은 병폐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기업이나 정부의 귀중한 인재들은 휴식할 시간도 없이 먹고 마시는 일에
정력을 낭비하니까 항상 몽롱하고 피곤한 상태에서 업무를 하게 된다.
폭탄주가 위 속에서 수시로 폭발하니 위장 간장이 견딜 수가 없다.
뱀이나 곰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접대문화와 상관이 있다.
개인이 파괴되면 가정도 파괴되고 궁극적으로는 기업이나 사회까지 무너져
내릴 위험에 처하게 된다.
마약만 무서운 것이 아니다.
사치 방탕이 업무란 이름으로 강요되고 또 업무를 빙자하여 자행되는 것은
국제수지나 경제성장 같은 고상한 이야기 이전에 우리사회와 국가의 기반을
푸석푸석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풍조, 이러한 문화, 그리고 날로 번성하는 이 분야의 "산업"들은
우리의 젊은이들까지 망가뜨리고 있다.
과도한 접대의 문제는 우리의 먹고 마시는 문화와도 관계가 있다.
먹고 마시는 인심이 한국처럼 후한 나라도 드문 것 같다.
친구들끼리 저녁을 먹어도 그 중 한사람이 음식값을 전부 계산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특히 손님을 접대할 때는 분수에 지나치게 해야 도리인 것으로 생각한다.
부모님의 회갑이나 칠순잔치를 할 때는 빚을 지더라도 "남부끄럽지 않게"
해야 효도를 한 것으로 생각한다.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시킬 때도 사람수에 비해 좀 과하게, 그리고 될 수
있는데로 비싼 것으로 시켜야 체면이 선다고 믿는다.
그러나 과도한 접대가 이처럼 문제를 일으키는 우리의 "병폐"가 된데는
정부의 과다한 규제, 기업간 거래에 있어서의 불공정 경쟁요인 등의 책임이
절대적으로 크다.
이러한 제도적 또는 관행적 요인들 때문에 접대나 금품제공같은
비정상적인 방법에 의한 경쟁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접대문제는 이미 굵은 뿌리가 우리사회에 깊게 내려져 있고 잔 뿌리들이
얽히고 설켜 단칼에 베어버리거나 단번에 뽑아버리는 식의 해결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단계적으로 대응한다고 해도 어디서 부터 손을 써야 할지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럴 때는 손 닿는 데서 부터 손을 쓰는 것이 상책이다.
문화나 전통을 너무 많이 이야기하면 되는 일이 없다.
정부 규제의 과감한 완화 및 합리화와 정부조직의 실질적인 축소가 어떤
경우에라도 가장 중요한 대 전제가 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조세정책의 측면에서도 이 문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다행히 최근 기업의 접대비 손비처리 문제에 관심을 갖는 젊은 학자들이
나타나서 기대를 갖게 한다.
여러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을 제기할 수 있지만 접대비 손비처리 한도를
과감하게 줄이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것은 접대비를 금지한다는 뜻이 아니다.
접대를 하되 세금은 부담하라는 이야기이다.
과도한 접대는 기업의 비용이라기 보다는 기업이윤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이전처분 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응분의 세금을 부담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
정상적인 업무의 성격을 갖는 접대활동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서 세무상
접대비로 비용처리될 수 있는 지출의 내용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접대를 받는 사람의 인적사항을 분명하게 밝히는 경우에만 접대비로
인정해주는 제도가 하루 빨리 도입되어야 한다.
기업의 접대비뿐 아니라 공공부문의 예산에서도 회의비나 업무추진비
판공비 등의 지출명세가 보다 분명하게 밝혀지도록 제도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일은 매우 번거롭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 기업이나 부서의
생산성을 오히려 단기적으로 떨어뜨리는 효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접대비를 빙자한 부패를 저지하는 궁여지책으로 이러한 방법이라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장치의 도입도 잘못하면 금융실명제처럼 번거롭기만 한
빈수레가 될 수도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도 그럴 듯한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일단은 당국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사실 금융실명제만 원 취지대로 실시되었다면 접대비는 문제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