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축하드려요. 애인도 없으신가? 오늘같이 좋은 날 하필이면
이 미인도 아닌 장닭을 불러주시고"

"장닭이라니요? 그런 말씀 마세요. 김사장님이 명함을 주셔서 저는
텔레파시가 통한다고 쾌재를 불렀거든예. 사장님은요 아직 18세 소녀같아예"

이놈 봐라, 제법 기분도 잘 맞추시네. 그러나 너희 젊은 애들 만나는
여자들에게마다 오늘이나 내일이 생일이라고 하지 않니? 그녀는 눙치는
기분이 되면서, "정말 생일을 축하드려요. 해피 해피 버스데이네요"

그녀는 사교계의 여왕답게 상당히 능수능란하다.

그녀의 외모보다는 그 싱그러운 매너가 모든 남자 여자 친구들을 사로
잡는다.

더구나 그녀는 지금 지코치가 지글러인지 아닌지 아리송하다.

우선 만나서 사귀고 싶은 귀여운 아이다.

그녀는 지금 넘기 힘들다는 49세의 초조한 나이다.

더구나 요새 사귀던 대학생 명구가 떠나버렸다.

그녀가 지영웅에게 명함을 줄 때는 의미심장한 그녀대로의 계산이 있었던
것이다.

사귀던 대학생 녀석에게 등록비를 대줘가며 데리고 놀았는데,
클라스메이트애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고 고백을 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영웅에게 명함을 주기 전날이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남자에게 받은 상처는 남자로써 치유해야 된다는
진리를 일찍이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영웅같이 잘 생긴 골프 코치가 자기에게 춤추자고 전화를 걸어
왔으니 이 아니 안성맞춤인가?

구세주같은 젊은 친구. 하여간 고마우이. 그녀는 열시면 잠자리에 드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타입이지만 오늘은 한번 그 리듬을 깨기로 한다.

대학생 애인에게 받은 굴욕과 분한 기분을 치료할 수 있는 기회가 될것
같아서 그녀는 얼른 약속을 해버린다.

지영웅은 득의의 미소를 날리면서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럼 람바다 호텔 라운지에서 10시에 약속하셨습니다.

사실 저녁은요, 우리 친구들이 한턱 낸대거든요.

그래서 10시까지 그곳에 가려고 해요.

저는 술을 잘 못 마시거든요"

그는 한껏 어린 소년같은 목소리로 어리광까지 섞어가면서 약속을 한다.

사실 8시에 박사장을 만나서 10시에 라미주단의 김사장을 만난다는 것은
아무리 걸어가는 거리에 있는 호텔들이라 해도 좀 무리다.

그러나 지금 지영웅은 만약 박사장이 자기의 비앰더블류 차를 안
사준다면 백만원을 주어도 절대로 그녀와 침대에 안 가려고 독한 마음을
먹고 있다.

그는 기분이 안 내켰지만 박사장과 약속한 바로 간다.

"록색바다"바는 언제나 음탕스런 분위기다.

룸으로 올라가는 간이역처럼 사용하고 있는 이 술집에 오면 그는 언제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절망적이고 우울하다.

박사장이 싫어서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