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영국 최대의 자동차 재벌 모리스를 세운 윌리엄 모리스는 경영
수완이 뛰어난 사업가였다.

그는 자신이 모든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업체로부터 부품을
만들게 하여 조립만을 함으로써 값싼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헨리 포드가 1911년 맨체스타에 자동차 조립 공장을 세우고
그 유명한 포드 T형을 대량 생산하면서 모리스차는 가격 경쟁력을 잃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모리스는 무리한 강압정책을 쓰게 됐다.

모리스 산하 부품업체들의 부품 가격을 일방적으로 깎아버린 것이다.

이러한 부품 업체 중 하나인 옥스포드의 MG(Morris Garages)사도 심한
타격을 받게 됐다.

모기업 모리스에 샤시부품을 납품하고 있던 MG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MG의 경영을 맡고 있던 세실 킴버는 다방면으로 재주가 많은
사람이었다.

경영 회계 뿐만 아니라 자동차 설계와 모터 스포츠에도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는 모리스의 저가 정책에 역으로 고가 전략을 세워 차량을 차별화
시키기로 했다.

당시 모리스의 주력차인 모리스 옥스포드라는 차는 가격이 저렴한 것을
제외하고는 성능과 품질이 그리 좋지 못했다.

중세 투구를 뒤집어 씌워 놓은 듯한 라디에이터 그릴은 투박하기만 했다.

이에 킴버는 모리스 옥스포드를 베이스로 차량을 약간 개선했다.

스포츠카와 같이 차체를 낮추면서 엔진은 경주용차 같이 튜닝을 하여
파워를 향상시킨 것.

보디는 친근감 있는 고유 디자인을 하고 독득한 바디 컬러로 상품의
가치를 높였다.

이렇게 MG는 경영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부품업체에서 자동차 회사로
발전을 했다.

더욱이 모터 스포츠광이었던 킴버는 제품의 선전에도 높은 안목을 갖고
있어 자동차 경주에서 우승하는 것이 최대의 광고 효과임을 알았다.

그는 1925년 올드 넘버원이라는 모델을 가지고 런던 자동차 경주에서
우승을 하여 MG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됐다.

트레이드 마크도 팔각형으로 바꾸고 새롭게 자동차 조립회사로 거듭나게
됐던 것이다.

MG 스포츠카는 소형 스포츠카로서 경쾌하면서도 값이 비싸지 않아 일반인
뿐 아니라 여성에게 많은 인기를 얻어 30년대 최대 스포츠카 메이커로
성장했다.

옥스포드의 조그만 조립장에서 스포츠카 제작업체들이 모여 있는
애빙던으로 옮기면서 "빠르고 안전한 차"를 모토로 급속한 성장을 하게 됐다.

이와같은 소형 스포츠카 시장을 석권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 J-시리즈로서
1932년 선을 보인 J2를 으뜸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차는 MG만이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유선형 바디라인에 뒤쪽으로 경사지게 자른 도어라인과 날리는 듯한
뒷바퀴의 흙받이는 경주용 승용차를 연상시켰다.

또한 두개의 반원 모양의 창과 차량 뒷부분에 노출되어 붙인 연료탱크는
랠리카의 다이나믹함을 연출했다.

8백47cc의 4기통 엔진에 36마력의 소형스포츠카 J2는 시속 1백30km의
속력을 내면서 20여년간 MG 스포츠카의 전성기를 열어준 차로 기억되고 있다.

김상권 < 현대자동차 승용제품개발 제2연구소장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