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강타한 M&A(기업인수합병)열풍이 태평양을 건너 일본에 몰아치고
있다.

그동안 M&A는 일본기업엔 "바다건너 일"이었다.

가족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는 기업풍토에서 회사와 직원들을 "이리 붙였다
저리 뗐다" 하는 것은 정서에 맞지 않았다.

M&A와는정반대격인 "종신고용"을 무기로 갖고도 일본기업은 80년대 세계를
풍미했다.

록펠러빌딩 매입등 미국에 제2의 진주만공습을 퍼부었다.

그러나 90년대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일본기업들은 세계 곳곳에서 M&A로 무장한 미국기업에 맹폭당했다.

대거 사들였던 미국 부동산을 도로 토해내는등 점령지에서 철수중이다.

M&A는 이제 일본기업에 경쟁력회복의 처방전으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최근 세가사와 반다이사의 합병발표는 그래서 거대비디오게임기회사와
최대 완구메이커의 "초대형 합병"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일본 재계는 이를 "M&A시대의 본격 도래"를 알리는 선언으로 평가한다.

M&A의 필요서이 커지는 것은 당장 미국기업과의 경쟁 때문이다.

일본 가마쿠라투자금융의 M&A상담역인 니콜라이 베네스는 "많은 사업가들이
미국의 공습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경영기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며 "요즘들어 M&A에서 그 해답을 찾는 것같다"고 말한다.

일본의 M&A는 그래서 미국과의 경쟁이 가장 치열한 첨단산업에서 활발하게
일고 있다.

의욕과 기술은 많지만 자금이 딸리는 유망중소기업들이 대기업들의 주된
"쇼핑대상"이다.

첨단산업외에 제약 화학업계가 그동안 M&A열풍을 앓았고 앞으로는 은행들과
제2금융의 합병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정부는 96회계연도(올 3월까지)의 M&A건수가 8백건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올해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증시하락으로 상장기업의 "가격"이 크게 떨어진만큼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란 예상에서다.

아직 M&A에 대한 저항은 거세다.

법적규제와 관행등이 모두 M&A에 부정적이다.

일본기업들은 지분분산이 잘되어 있어 빠른 기간내의 주식매집이 쉽지 않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최근 규제완화정책을 펴고 있다.

물론 방향은 M&A활성화쪽이다.

경쟁력강화를 위한 노력은 과거에 적대시 했던 외국기업과의 결합까지도
눈감아주는 추세다.

지난 95년 1월 미국 실리콘밸리의 인튜이트사와 "결합"한 은하수란
재무관리전문 소프트웨어회사는 지금까지 도쿄 소프트웨어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다.

은행산업의 위기도 M&A활성화에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본은행들은 그동안 기업이 어려울때 주식을 매입해 주는 형태로 자금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부실채권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유주식을 팔아야 할
형편에 놓이게 됐다.

정부도 이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결국 은행이 파는 주식을 살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은행보유주식의 매각대상은 조만간 외국인들에게도 확대될 전망이다.

일본 M&A의 국제화가 빠른 시일내 이뤄질 것임을 예고해 주는 대목이다.

미국에 이어 일본을 강타하고 있는 M&A바람은 곧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로 몰아칠 기세다.

< 육동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