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줄을 대야 하나"

은행 주총을 불과 보름정도 앞두고 행장이나 임원후보들이 고민에 빠져
있다.

은행장이나 임원이 되려면 외부실력자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게 그동안의
경험이지만 실력자들은 모두 검착에 가 있는 형국이어서 선을 댈 곳이 없어진
때문이다.

은행 임원인사에 일종의 "힘의 진공" 상태가 생겨난 것이다.

예년같으면 연초부터 행장과 임원후보들은 외부실력자를 찾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그래야만 행장도 될수 있었고 임원도 될수 있었다.

그래서 후보들은 은행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이 때문에 은행업무가 차질을 빚을 정도였다.

외부실력자로는 정치권실세 국회의원 정부고위관료 청와대인사 등이 꼽혀
왔다.

한보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해도 임원후보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이수휴 은행감독원장이 지난달 "엄정한 인사를 실시하고 청탁을 배격하라"는
공문을 보낼 정도였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한보사태로 은행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력자들이 일시에 사라져버려 임원인사의 경우 은행장의 뜻에 의해 좌우되는
바람직한 현상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다른 임원은 "은행장이 되려는 사람은 일단 비상임이사들에게 얼굴을 알리는
정도일뿐 외부실력자를 찾아다니는 일은 없다"고 전했다.

금융계에서는 한보사태로 야기된 이번 상황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 차제에
자율인사 풍토가 정착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 하영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