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한보사건와 관련해 12일 검찰이 김우석 내무장관과 신한국당
황병태 의원을 소환하자 충격과 침통속에 착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날 두사람의 검찰소환은 김광일 비서실장조차 언론보도를 보고 알았을
정도로 사전에 전혀 감을 잡지 못해 충격의 도를 더해주고 있다.

김실장은 이날 오전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는 도중 언론보도를 접한
비서관이 메모를 넣어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윤여준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윤대변인은 "김실장 이하 모든 수석들이 그때까지 전혀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며 "모두 충격으로 받아들였다"고 소개했다.

윤대변인은 "현직 내무장관이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다면 검찰이 뭔가
확실한 혐의를 잡고 하는 것 아니냐"며 "엄청난 일"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고위당국자는 "현직장관이 검찰에 소환되는 마당에 음모설이 나올
수 있느냐"며 음모설을 일축한뒤 "물흐르는대로 불똥이 튀는대로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검찰수사가 마무리단계인지 확대되고 있는 것인지 나도
알수 없다"고 강조하고 "김대통령은 김장관과 황의원의 소환사실을 사전에
보고받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반적으로 이날 언론보도를 접한 청와대 참모들은 이구동성으로 "권력의
핵심세력인 민주계가 초토화되고 있다"며 집권세력의 중심축이 흔들리고 있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일부 청와대 관계자들은 "한보 대출비리 의혹사건이 정치권 싸움으로 비화
되고 있어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며 정치권의 대응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들은 특히 야당이 증거도 없이 김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를 걸고 넘어지고
김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는 것은 저질정치라고 성토하고 있다.

재경원과 경제수석실에 대해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지금 한보 부도로 국가위기가 초래되고 있는데 반해 재경원과 경제수석실
에서는 과연 부도처리에 얼마나 신중한 검토와 고민을 했느냐고 의심하고
있다.

부도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겠지만 아쉬움이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검찰수사가 대출비리의혹 뿐만아니라 정책결정
과정 전반에 걸친 의혹도 함께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는 요즘 한마디로 한보사태에 대한 검찰수사로 충격과 울분, 무력감,
실망감, 배신감 등이 한데 어우러져 착잡한 분위기다.

김대통령 역시 침울한 가운데 말이 없어졌다고 한다.

< 최완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