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웅의 심상찮은 기분을 심각하게 캐치한 박사장은 갑자기 몸도 약해
보이는 이 청년을 그대로 데리고 논다는 것이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다.

더구나 일금 백만원씩이나 지불하면서, 아무리 그가 청결하게 생긴
외모의 남자라 하더라도 그것은 좀 과분한 지출인 것 같다.

"내키지 않으면 그냥 돌아가도 돼요. 나는 마침 오늘 좀 기분 안 좋은
일도 있고. 나도 썩 내키지 않는 데이트는 안 해요"

지영웅에게도 너무나 반가운 말씀이다.

세상에 목숨을 걸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열여덟살에 가락동
공판장에서 생선을 흥정하던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흥정은 어디까지나 흥정이다.

"박사장님. 제 차요, 735면 어디 가서든 자존심 세우고 탈 수 있어요.
여유 있으시면 사세유. 반값으로 팔겠어유"

"반값이면 얼만데?"

그녀는 진정 그 차가 타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 현금은 없다.

돈이 없으면 마련하면 된다.

다행히도 스키야키집은 지금 대성황이다.

하루 백만원 정도는 벌고 있다.

좌석도 많고 한곳에서 10년이상 했으니 단골도 많다.

그녀는 돈에는 별로 겁이 없다.

초등학교 교사 하다가 남편이 죽고, 곧 일식집을 경영해서 돈도 많이
벌고 번 만큼 쓰기도 많이 썼다.

자기 혼자서 결제하는 입장인 그녀는 비앰더블류든 뭐든 타고 싶은
차는 탈 수 있다.

"왜 갑자기 팔려는거지? 나더러 국산차 탄다고 흉을 보고 그랬으면서?"

"사실은요. 고향에서 할아버지가 병에 걸리셨거든요. 당장 수술을
하셔야 되는데..."

"무슨 병인데?"

"폐암이래요"

그러면서 그는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아깝지만요. 팔아서 수술해드리려구요. 할아버지는 저를 길러주신
어머니 같으신 분이거든요"

그녀는 손수건을 내주면서 그에게 눈물을 닦으라고 했다.

가엾은 녀석, 어쩌다가 그렇게 힘든 일을 당했을까? 그녀는 감정적인
여자인 만큼 또 그만큼 인정도 많았다.

말하자면 눈물이 많은 여자였다.

"언제까지 그 차를 처분해야지? 나는 지금 여유돈이 없어요. 은행에서
대출이라도 내기 전에는 살 수가 없어. 하지만 욕심은 나구. 큰일 났네"

어쩌면 일은 잘 되어갈 것 같다.

그러나 바짝 고삐를 틀어쥐어야지.

"저는 그래서 오늘 밤으로라도 시골로 가서 할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켜야 돼요. 지금 수술하면 나을 수도 있대요. 시간을 다투는
상태래요"

그래? 그러면 너는 오늘 나하고 룸에 갈 수가 없다는 것 아니냐? 그녀의
양미간이 잔뜩 찌푸려진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