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사태로 온나라가 난리다.

의혹은 끝없이 증폭되고 전모의 일단이 들어날 때마다 국민들은 또
경악한다.

이런 와중에 경제는 실종 직전이다.

그렇찮아도 어려운 경제가 이러다간 정말 3류정치와 함께 파국을 맞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통상산업부가 며칠전 우리기업의 설비투자 계획을 조사해 발표한 내용은
이런 우려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94년이래 40%를 넘었던 투자계획 증가율이 지난해에는 21%, 올해는 아예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설비투자 계획이 줄었다는 것은 다름아니다.

기업들이 그만큼 사업할 의욕을 잃었다는 뜻이다.

확대해석한다면 이땅의 기업가 정신에 지금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국경제의 눈부신 성장요인으로 흔히 꼽혀온 3가지가 있다.

<>정부의 효율적 경제정책 수립 <>기업인들의 기업가 정신 <>근로자들의
근면성. 다시말해 테크노크라트 기업인 근로자, 이 3축이 바로 불모의 폐허
위에서 오늘의 경제기적을 일구어낸 주역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의 한국경제를 위기에서 구출해줄 주역은 누굴까.

도대체 누구에게 경제회생의 돌파구를 열어주길 기대해야 할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런가운데서도 기대선에서 제외될 첫번째 대상은
분명하다.

바로 정부다.

관료조직이다.

물론 우리정부에는 우수하고 애국심으로 무장된 경제관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정부는 정치와 필연적인 연결고리를 맺고 있다.

썩은 정치풍토아래서 정의로운 공직자가 소신을 펴기란 정말 쉽지 않다.

설혹 그런 테크노크라트들이 몸을 던져 나선다 해도 과거 개발연대와는
사정도 다르다.

지금은 정부가 특혜와 규제로 기업을 움직일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는 기업이 너무나 앞서가고 있다.

근로자들에게 거는 기대는 언제나 변함이 있을 수 없다.

훌륭한 정책, 훌륭한 생산시설이 있다해도 양질의 노동력이 없다면 모든게
무위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경제발전의 첫번째 공도 그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다.

문제는 요즘의 근로현장 분위기가 예전같지 않다는데 있다.

돈을 더 벌 수 있는 잔업을 꺼리고 휴일을 선호하는 것도 일반적인 추세다.

소득수준 향상과 더불어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이지만 지금은 그런 당연한
상식만으로 경제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여유로운 때는 아니다.

기업가정신도 물론 종래와 같을 수는 없다.

흔히 얘기하는 고비용 저효율 구조는 우리기업인들의 해외탈출을 가속화
하고 있다.

외국기업들이 대한투자에 대한 매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우선 기대할 곳은 바로
기업이다.

투철한 기업가 정신이다.

최근에 만난 한 재계원로는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그와 친한 중국인이 한국기업인은 광동개와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광동지방 사람들은 집에서 기르는 개를 잡아먹는 풍습이 있다.

그런데 광동개는 주인이 잡아먹기 위해 털을 깍고 껍질을 벗기려면 도망을
치지만 얼마안돼 누더기같은 모습으로 다시 꼬리를 치며 주인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러기를 몇번 반복해도 광동개는 매번 주인에게로 돌아오고 끝내는 잡아
먹히고 만다.>

아무리 여건이 나빠져도, 심지어 부도를 내 감옥에 가서도 새사업을
구상할 정도인 우리기업인의 본능적 사업의욕을 광동개에 빗대어 표현한
셈이다.

사실 광동개와 같은 기업인들의 사업에 대한 투지는 아직도 우리주변
곳곳에서 감지된다.

악조건 속에서도 경쟁업체에 절대 지지않으려고 벌이는 치열한 재계의
확장경쟁이 그렇다.

피나는 신규사업진출 노력도 결코 비난할 성질이 못된다.

그런 투쟁본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영예로운 한국 기업가
정신의 몰락을 재촉할 뿐이다.

기업의 자금수요가 금융권의 공급능력을 절대 웃도는 특이한 한국적
현상도 따지고보면 마찬가지다.

그만큼 기업가의 사업의욕이 왕성함을 나타내는 한 단면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조지길더의 말을 빌리면 <기업가는 시장의 필요에 의한 도구가
아니라 창조자다.

기회를 뒤쫓는 자가 아니라 기회를 창출하는 자다.

지뢰밭이라도 이윤만 주어진다면 생사를 초월하여 기꺼이 뛰어드는 모험
정신, 그것이 바로 기업의 정신이다.>

지금은 한 이단적인 기업, 한보로 인한 기업의 부정적 허상에 메달릴 때가
아니다.

기업가정신 마저 퇴조하면 우리경제는 더이상 기댈 곳이 없다.

그들을 독려하고 고무시키켜야 할 때다.

그래야 경제가 살고 나라가 산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