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특혜대출의혹사건 수사가 사실상 마감됐다.

이제 남은 절차는 구속된 사람들의 증거보강을 마친 뒤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것 뿐이라고 한다.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장관 1명 여야의원 4명 은행장 3명을 구속하는
내용으로 끝나는 것같다.

그러나 국민들의 의혹은 아직 가시지 않고 있다.

우선 검찰의 태도가 그렇다.

몇년에 걸쳐 5조원이라는 돈이 밀거래된 사건을 3주도 안되는 짧은 시간
안에 수사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또 시중에 떠돌고 있는 온갖 소문에 대해 "수사할 계획이 없다"는 말로
일관한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수사는 "계획"이 아니라 "의심"에서 출발하는 데 말이다.

검찰의 이같은 모습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인 판도라를 보는 것
같다.

인류최초의 여인인 판도라는 신에게서 상자를 선물로 받고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열어제쳤다.

그 안에서 인간사의 고통과 추악함이 튀어나오자 황급히 뚜껑을 닫았다.

한국의 검찰 역시 검은 돈의 마력을 잘 아는 한 노회한 기업가가 만든
한보상자를 열었다가 서둘러 다시 덮은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판도라의 상자처럼 추악한 것만이 나올까봐 그랬을까.

더이상 봐서는 안될 게 있어서 였을까.

아니면 더이상 보여줄 것이 없어서 였을까.

검찰이 이처럼 한보상자의 문을 닫아버림으로써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의혹의 문은 오히려 더 활짝 열려버렸다.

국민들은 "왜 깃털만 보여주는가. 몸체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라고
말하고 있다.

검찰이 정말 상자에서 꺼낼 것을 다 못꺼내고 억지로 닫았다면 훗날 이
상자가 재개봉되는 비극이 없으리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국민들은 반쯤 열리다만 한보상자의 개봉을 줄기차게 요구할 게 분명하다.

의혹만 남은 한보상자가 언제쯤 다시 열릴지, 그때 검찰이 역사와 국민
앞에 떳떳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윤성민 < 사회1부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