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드라마가 끝났을 무렵,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여기서 잠깐"이 눈에 띈다.

평일 오후 10시대와 11시대를 이어주는 브리지 프로그램인 MBCTV
"여기서 잠깐" (월~목 오후 10시55분~11시 금 오후 11시05분~11시10분)은
친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을 준다.

정보 제공 위주의 기존 브리지 프로그램과 달리 생활주변 현장에 찾아가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나 상황을 생생히 보여줘 시청자들이
"잠깐" 생각해 보도록 환기시킨다.

5분짜리 프로그램이지만 광고를 빼면 실제 방영시간은 약 3분.

이 짧은 시간에 보통 간과하기 쉬운 일상생활의 문제점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거나 모르는 사이에 파고든 새로운 흐름을 짚어준다.

내용과 형식에서 앵커의 틀지우기만 없을 뿐이지 메인뉴스의 현장 취재
코너와 비슷해 뉴스의 한 부분을 보는 것같다.

전체적으로는 "현장고발"의 성격을 띠지만 뉴스시간의 그것처럼
요란하거나 자극적이지 않다.

MBC "뉴스데스크"의 "카메라출동"을 8년 넘게 맡았고 "정보 데이트"
"주부경제정보" 등 짤막한 정보프로그램을 제작했던 김민호PD는 연출 취재
리포트 등 1인3역을 하며 다양한 삶의 모습을 쉽고 군더더기없이 보여준다.

김PD의 오랜 경험에서 얻어진 인터뷰 기술과 간결하고 명료한 멘트,
흡입력있고 절제된 구성은 이 프로그램의 덕목이다.

김PD는 점퍼차림의 수수한 옷차림과 특유의 어조로 자신의 퍼스낼리티를
최대한 강조한다.

이같은 점들이 "여기서 잠깐"을 일반 브리지 프로그램처럼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식으로 흘려버리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보는 고정 시청자들이
늘어나게 만드는 이유로 보인다.

허구인 드라마의 세계에 빠져 있던 시청자들에게 우리 주변의 삶의
문제점들에 대해 잠깐이나마 생각하게 하는 편성의도도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제작진은 작가 스크립터 조연출 카메라맨까지 고작 5명.

5분짜리 프로그램이지만 이 인원을 가지고 매주 5편씩 만들어내는 것은
무리다.

이같은 제작여건과 3분이라는 시간의 한계는 프로그램에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우선 "여기서 잠깐" 다루기에는 벅찬 사안들도 등장한다.

10일 방영된 내용이 그랬다.

서울 강동구 등촌동에 있는 상수리숲에서 최근 나무들이 말라죽고
베어지고 있는 실태를 다뤘다.

하지만 단지 현상만 보여줬을 뿐 나무들이 말라죽는 이유와 누가 이런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는 전혀 파헤치지 못했다.

또 제작여건상 "여기서 잠깐"이 달려가는 현장은 서울과 수도권지역을
못벗어난다.

"여기서 잠깐"이 전국 네트워크프로그램으로는 부적합하게 보이는 것은
이러한 제약 때문이다.

< 송태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