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들은 한보사태에 대해 면피로 일관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의
책임은 일관성 없는 산업정책이 한 몫을 했다는 지적도 많다.

특히 통산부가 지난 95년 포철에는 당초 코렉스 건설계획을 고로증설로
바꿔 추진토록 한 반면 한보철강엔 코렉스설비 도입을 방조한 것으로 알려져
원칙없는 철강투자를 유도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또 이는 당시 현대그룹의 일관제철소 추진을 저지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알려져 정부가 특정 목적을 위해 철강투자를 무원칙하게 좌지우지
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정부가 한보철강의 코렉스 건설을 정식으로 허용한 것은 지난 95년 2월.

한보철강의 전직 임원들은 "당시 첨단기술로 알려진 코렉스 설비를 도입
하는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한보철강은 코렉스설비 도입에 대한 타당성 검토를 제대로 하지도
않은채 졸속으로 도입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관제철 경험이 없는 전기로 분야의 사람들이 실무계획을 수립한 것이
이를 반증한다.

이처럼 한보철강에 코렉스 설비를 전격적으로 허용해준 통산부는 포철에는
전혀 다른 입장을 보였다.

포철은 지난 94년8월부터 광양제철소에 코렉스 설비 도입을 계획했으나
통산부가 95년5월 이를 고로로 바꾸도록 한 것.한보에 코렉스 건설을
허가한지 불과 3개월만의 결정이었다.

그렇다면 통산부가 한보엔 코렉스 건설을 권유하고 포철에는 말린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선 통산부가 현대그룹의 일관제철소 건설을 막기 위해 일종의 "작전"
을 구사했다는게 정설로 통한다.

포철에 대량 철강설비인 고로증설을 허용해 철강 생산량을 크게 늘려 놓고
현대제철을 견제하려 했다는 얘기다.

또 한보철강엔 코렉스를 허용해 현대의 일관제철소 추진에 신공법 도입
필요성 논리로 맞서는 양동작전을 썼다는 것.

물론 한보철강에 코렉스를 허용한게 현대의 일관제철을 저지하기 위해서
만이라고 볼순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통산부가 작년 11월 현대 제철소 불허를 공식 발표하면서 "향후
철강투자는 신공법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부연해 결과적으론 그런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어쨌든 한보철강 코렉스 공장 허용을 전후한 정부의 철강투자 관련 정책
결정과정은 어떤 원칙을 찾아보기 어렵다는게 업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 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