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자동차 홍종만사장.

그는 94년말 이 회사 대표이사로 취임한 직후부터 매주 주말만 되면 기흥
연구소로 내려가 작업복을 입어야 했다.

자동차정비교육을 받기 위해서였다.

삼성그룹에 입사한 이래 공장근무조차 해보지 않은 그가 쉰을 넘긴 나이에
기름때를 묻혀가며 정비교육을 받게 될 줄은 상상이나 했을까.

어쨌든 그는 이런 혹독한 재교육(?)을 상당기간 받고 나서야 자동차업체
사장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고 지금은 그룹의 꿈이 담긴 부산공장건설을
총지휘하고 있다.

자동차업체 사장들의 세계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

상대를 나왔건 법대를 나왔건 "세미엔지니어" 칭호를 듣고 있고
"준디자이너"로 불릴 정도의 심미안도 지녔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았기에 판매에는 "귀재"라는 칭호도 따른다.

사업장이 세계 전역에 흩어져 있으니 국제화에서도 선두주자라 할만하다.

전자업체 사장들이 바쁘다지만 협력업체나 노사 관리라는 골치 아픈 일은
자동차에 비할게 아니다.

조선업체 사장들이 "노사 문제는 우리가 더 골치아프다"고 할지 모르지만
회사 앞까지 제품(차)을 가져와 바꿔줄 것을 항의하는 경우는 없을 터이다.

선박의 경우 공장 한쪽 구석에서 화재가 나도 작업에 별 지장이 없다.

그러나 자동차업체 사장은 범퍼 협력업체 한곳만 놀아도 비상대책회의를
열어야 한다.

그런 까닭에 그들의 업무는 다른 업종 사장들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제품의 기획단계부터가 그렇다.

자동차업체 사장들은 누구보다 자동차를 잘 알아야 한다.

전문서적은 물론 해외에서 열리는 모터쇼를 둘러보며 트렌드를 읽어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신차개발 초기부터 설계팀은 물론 협력업체, 생산기술까지
모두 동시에 참여하는 동시공학(Simultaneous Engineering)체제로 끌고
가려면 사장이 개발과정을 모르고서는 곤란하다.

개발과정을 알아야 가장 중요한 제품개발에 실수가 없다.

기아자동차 김영귀사장은 해외모터쇼에 나가면 전체적인 기술은 물론
헤드램프와 같은 단일 부품을 완전히 분석해 연구소에 과제로 넘겨줄 정도로
"고단수"다.

미적인 감각도 남달라야 한다.

신차품평회에서 디자인팀이 가장 자신없어 하는 부분을 가장 정확히
꼬집어내는 것도 사장이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자동차와 누구보다 오래 생활하면서 생겨난 노하우다.

현대자동차 박병재사장의 경우 공장장시절부터 디자이너들에게 서울
압구정동이나 부산 광복동을 정기적으로 찾아보라고 차비를 준다.

울산이나 남양만에 박혀있다보면 패션을 놓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생산은 더 큰 업무다.

라인이 갑자기 서버렸다면 잠을 자다가도 공장으로 뛰쳐내려가 문제해결에
나서는건 사장들이다.

부품은 제때 들어오는지 줄잡아 5백개나 되는 협력업체들의 애로사항을
살펴야 한다.

라인의 생산성이나 효율을 높이는 것도 항상 사장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하는 것들이다.

영업과 애프터서비스는 말할 것도 없다.

사장들은 어느 곳을 가든 꼭 영업소에 들러 영업사원이나 고객들의 의견을
듣는다.

대우자동차 양재신사장은 하루일과를 정비공장에서 처리한 고장차량의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으로 끝낸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찾아 경고장을 보내 같은 부분의 문제를 재발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현대 박사장은 길을 지나다 고장난 현대차를 보면 직접 회사에 연락해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자리를 뜬다.

"가장 비싼 내구소비재"를 다루는 업종의 사장들이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는게 그의 지론이다.

그러나 이 모든 필수조건보다 자동차업계 사장들을 괴롭히는 것은 노사
문제다.

대부분 사장들이 업무의 70%가 노사관계라고 답할 정도다.

대우 양사장은 지난해 노조와 테이블에 앉은 횟수가 1백번이 넘는다고
말한다.

대우가 요즘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투자단위가 큰 탓에 재무에 소홀할 수도 없다.

매출액이 많게는 14조원, 적어도 수조원에 이르는 기업을 빈틈없이
움직이니 여기에도 "달인"들이다.

자동차업계 사장들의 업무는 2만여개 자동차부품수와 같다고 한다.

이들을 "오케스트라 지휘자"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 김정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