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돌아가는 일이 꼭 영화보는 듯하다.

초대형 와이드 스크린에 스쳐지나가는 숨막히는 영상들-그 영상 속의
시시한 엑스트라들인 우리는 어떻게 될까,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날
것인가.

정말 그러기를 바란다.

인류의 역사는 몇몇 사람의 독재와 계략에 의한 다수에의 폭력과 횡포로
이루어져 왔을 거라는 의심을 우리는 이 시대에도 버릴 수가 없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그럴듯한 이론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얼마나 많은 어버이와 자식들이 남과 북으로 흩어져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었는지.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종언을 고한지 언제인데, 아직도 왜 우리는 몇
십년전 어릴적부터 기억 속에 남은 "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라는 진부한 표어를 잊을 수 없는지.

그리고 왜 보복이니 납치니 하는 으스스한 단어들이 아직도 우리를 감싸고
있는지, TV를 보며 아무 죄 없는 서민들은 숫자를 세기에도 힘이 든 거액의
돈덩어리에 왜 늘 분노해야 하는지.

어쩌면 세상은 반장과 부반장과 기율부장 등이 코묻은 학급 아이들의
돈을 걷어 몽땅 떡볶이를 사먹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인지 모른다.

세상과 세계와 역사가 늘 이런 식으로 이루어져 왔다면, 중세에는
거대한 성당과 절과 궁전의 한 구석을 쌓아올린 작은 일꾼이었고, 현대에는
기업의 톱니바퀴로 살아가는 대다수의 군중은 무슨 색의 꿈을 지녀야 할까.

아니 식량조차 얻기 힘든 북한의 허울 좋은 노동자 농민들에겐 아직도
속고싶은 미래가 남아 있는지.

20년전 대학 초년병 시절 학교 근처의 조그만 소극장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던 생각이 난다.

최루탄 냄새와 꽃냄새가 범벅이 된 우리들 청춘의 지루한 봄-20년이
다시 흘러도 우리가 기다리던 고도는 오지 않았다.

2000년이 지나면 우리들의 늙고 지친 꿈은 어떻게 될까.

정말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읽고 또 읽는 기분이 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