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부도 파문은 이제 망각의 강을 건너고 있다.

검찰의 사법적 수순도 마무리단계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는 오히려 의혹만 부풀리고 있다.

한보가 부도나기 까지 마지막 30일간 많은 일이 있었다.

격론과 담판, 배신과 비밀회동 그리고 미련과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다.

순간마다 루머는 춤을 췄고 6조원의 드라마는 막을 내리기를 주저했다.

최종부도처리로 거대기업의 몰락이 선언되기까지 숨가빴던 한달여 기간
동안의 뒷얘기를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재구성한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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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11월25일 오후 5시경.

서울 종로구 공평동 제일은행 본점 11층 행장실.

검정색 중절모를 쓴 풍채좋은 정태수한보그룹 총회장이 행장실로 들어갔다.

불과 2~3분여를 지났을까.

막 녹차 한잔이 들어간 다음.

두런두런하던 소리가 점차 높아지는가 싶더니 급기야 정총회장의 고함소리
가 두터운 목제 문을 뚫고 터져 나왔다.

"신행장. 정말 이렇게 나올끼요. 다 죽는 꼴 볼라캅니까"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려 왔다.

상대는 대답이 없다.

행장실 밖엔 싸늘한 긴장감.

"내가 다 처리해 놨다 이말이요. 조금만 더 밀어주면 우리 둘다 벌떡
일어선다 이말이요. 막판에 와서 이러면 우짜라는 기요. 도데체가-"

상대편에서도 목소리가 커졌다.

"이제 더는 안된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담보를 더 내놓으세요. 회사를
살리겠다는 성의는 보여줘야 하쟎소. 우리로서도 한계에 왔다 이 말씀
입니다"

"담보를 더 달라니. 당진 땅이 몇평이야. 공장이 다되면 그 땅이 얼마
짜리야. 행장이면 행장답게 나와야지 담보니 뭐니 하는 거는 실무자들이나
하는 말 아니야. 당신 나한테 정말 이럴수 있어"

"나도 할만큼 했어. 당신이야말로 왜이래"

고함소리는 사무실마다 불이 켜지기 까지 40여분간이나 계속됐다.

행장실 밖에 대기한 임원과 실무자들은 다가오는 거대한 폭풍을 예감하고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었다.

결국 이날의 담판이 거대한 한보 부도 드라마의 분수령이었다.

"행장실의 담판"이 입을 타고 전해지면서 어음들이 본격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제2금융권은 노골적인 경계 경보를 울렸고 증권가에는 루머가 나돌았다.

장전된 총알이 발사되는 격발점(trigger point)이었던 셈이다.

정태수총회장.

73세의 고령이지만 왕성한 정력의 소유자.

로비의 귀재로 불리는 사람.

95년 유럽 여행때 뇌혈관이 막혀 오른쪽 전신 마비증세까지 겹쳐 있는
터였지만 11월 들어서는 한순간도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아들 정보근회장과 김종국재정본부장이 열심히 뛰었지만 상황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사람이든 돈이든 터진 둑처럼 한곳을 막으면 다른 곳이 뚫려 그동안의
인맥관리도 물거품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직접 나설도리 밖에 없었다.

먼저 찾아간 곳은 이수휴 은행감독원장.

11월 중순께였다.

"당진 제철소가 막바집니다. 은행들이 시설자금을 지원하도록 이원장께서
좀 도와주십시오"

이원장의 반응이 신통찮았다.

이원장은 긴장된 얼굴에 힘들여 미소를 지으며 "개별기업에 대한 은행지원
에는 제가 뭐라고 말할 입장이 못됩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제일은행과 조흥은행으로 발길을 들렸다.

냉랭하기는 마찬가지였다.

"9월달에 준 사과상자의 약발이 벌써 다 떨어졌단 말인가"

"이럴줄 알았으면 대동조선은 인수(9월)하지 않는건데--"

정총회장은 대동조선 인수에 만도 2백14억원이나 썼다.

"국감때 국회의원들 막아달라고 해서 다 막아줬쟎아"

분통이 치밀어 올랐다.

12월에 접어들자 하루하루는 피를 말리며 다가왔다.

애랄것 없는 2금융권은 저승사자들 처럼 어음을 돌려댔다.

다시 실력자들을 찾아나섰다.

역시 정치권이 이럴 때는 좋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홍인길의원등 가까운 국회의원들에게 SOS를 쳤다.

효과는 금방 나왔다.

12월3일 조흥은행이 운전자금 명목으로 1천억원을 내주었다.

제일은행도 24일께 1천억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급한 불은 껐다 싶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제일은행등엔 한보사람들도 잘모르는 어음들이 돌아왔다.

막을수록 돈달라는 곳은 더욱 많아졌다.

이번에는 이석채경제수석에게 선처를 호소했다.

그는 "은행부터 설득해 주셔야지요"라면서 연말연시에 부도가 나면 큰일
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평소와 달리 만나는 사람마다 슬금 슬금 꼬리를 뺐다.

시베리아 가스건으로 두차례나 만난 적있는 한부총리도 "워낙 국회일정이
바빠서..."라며 만나주질 않았다.

다시 은행을 돌았다.

장명선 외환은행장은 생긴대로 고집불통이었다.

9월중순에 시설자금 1천억원을 준 이후로 계속 뒷짐만 지고 있었다.

앞으로도 더이상 자금지원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단독으론 자금지원이 어렵습니다"(산업은행 김시형총재)

"추가담보를 주세요"(서울은행 장만화행장 대행, 주택은행 신명호행장)

"이러다간 다 망한다"는 협박카드도 소용이 없었다.

제일은행장이 모질게 등을 돌린 이후 사발통문이 돌았는지 모두들
요지부동이었다.

이렇게 96년이 저물어갔다.

30일엔 1차 부도위기에까지 몰렸다.

정총회장은 집에도 가지못하고 캠프(하얏트호텔스위트룸)에서 세모를
맞았다.

< 이성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