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 벌써 6년이 지났다.

1990년 모스크바대학교 동방언어학부에서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당시 러사아
사람들에게 생소했던 한국의 언어와 역사를 배우기 위해 한국땅을 밟았다.

많은 한국 사람들과 교제하는 동안 한국의 문화와 역사및 언어에 대해서만
배운게 아니라 인간관계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됐다.

한국의 첫인상과 지금의 생각에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한국에 대한 착각과
맹목적인 사랑에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한국은 말그대로 완벽한 소비사회다.

원래 무엇을 하든 완벽을 추구하는 한국인들은 이 분야에서도 완벽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인구의 절반은 생계비를 얻기 위해 자유시간이 단 일분도 없을만큼 정신없이
일한다.

가장이란 멍에를 지고 자신이 속한 회사나 단체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다.

반면 나머지 절반은 아주 정신없이 견물생심에 흥분해 여기저기 다니면서
소비를 일삼는다.

돈을 벌고 돈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소비할 시간이 없고 돈을 벌지 않고
돈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돈을 물쓰듯 한다.

그런 구별이 있어서 그런지 한국사람들의 소비문화는 크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

"전문" 소비자들 중에서도 특히 학생들이 주목의 대상이다.

한국가정에서 저축의 가장 큰 부분이 자식들의 교육비와 나간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내가 보기엔 한국사회에서 대학이란 지식을 얻는 과정, 즉 인간적으로
견문을 넓히는 것보다는 출세와 신분상승을 위해 꼭 거쳐야 할 의무이다.

그래서 대학생은 무엇을 얼마나 배웠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대학
에서 배웠느냐가 더 중요하다.

대학교 입시만 끝나면 때이른 성취감이 들어서인지 정상적인 공부가 끝나는
것으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극단적 소비에 몰입한다.

노래방 밀실비디오방 로바다야키 록카페.

이러한 "유흥산업"이 번창하는데는 학생들의 공로(?)가 크다.

해외로 유학간 학생들은 정도가 더욱 심하다.

그 이유는 감시하고 공부시키는 부모들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러시아에서만 수천명의 한국 유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과연 한국에 그만큼 러시아 전문가들이 필요한가 의문이 생긴다.

한국유학생들이 쓰는 유학비를 다른 첨단산업에 투자한다면 한국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