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경영인은 한마디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오기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다.

이는 결코 수사가 아니다.

반도체는 업종특성상 기술력이나 제품출하시기에서 앞서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데다 미국 일본등 선진국보다 출발시기가 늦어 오기없인 생존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윤우삼성전자 반도체총괄사장은 삼성이 메모리반도체를 막 시작해
꼴찌기업이던 시절에 당돌하게도 세가지 목표를 세운 사람이다.

"세계 최고가 되자.

세계 최대 컴퓨터업체인 IBM에 납품하자.

전자학회지에 반도체관련 논문을 싣자"

어느 하나 쉬운게 없었지만 그는 마침내 이 세가지 목표를 모두 이뤄냈다.

6척이 넘는 장신인 그는 일단 목표를 세우면 회사에서 먹고 자는 것을
당연시하며 끝내 이뤄내는 오기를 가졌다.

40대에 삼성전자사장을 맡은 것도 이같은 집념의 결실이랄수밖에 없다.

비메모리부문인 시스템LSI대표이사를 맡고있는 진대제 삼성전자부사장은
그룹내 "국보1호급 박사"로 불린다.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IBM왓슨연구소에 근무하다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며 사표를 낼때 던진 말은 "Swallow Japan(일본을 삼키겠다)"이었다.

어릴적부터 일본을 이기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끝내
16메가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냈다.

현대전자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김영환사장과 생산전문가인 나영열
부사장이 콤비를 이뤄 21세기 세계 10대 반도체 업체로 키운다는 야심을
갖고 뛰고 있다.

김사장은 현대건설에서 영업 기획 관리 구매 마케팅을 두루 섭렵, 시야가
넓은 것이 큰 강점이다.

특히 현대전자 미국현지법인장을 7년동안 맡는등 해외에서 오래 근무,
국제감각이 뛰어나다.

선진기업의 인수와 기술제휴를 통해 짧은 시일안에 이들과의 기술격차를
줄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경쟁사를 따돌리고 세계적인 비메모리 기술력을 가진 미국 심비오스로직
인수에 성공한 것은 단적인 예다.

현대의 나영열부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반도체 생산부문의 전문가.

아남산업에서 생산이사를 지낸뒤 88년 현대전자로 옮겨 조립사업본부장
생산본부장등 줄곧 생산을 관장해왔다.

LG반도체 경영인들은 현장을 중시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장직도 맡고 있는 문정환LG반도체부회장은 수시로
현장을 찾다보니 서울 사무실에서도 근무복차림으로 일할 때가 대부분이다.

이는 반도체 경영의 성패가 의사결정속도에서 판가름난다는 경영관에서
비롯된다.

이른바 스피드경영이다.

물론 투자와 같은 중대한 사항은 숙고를 거듭하지만 여타 분야는 회의도
공장에서 하고 즉각 결론을 내린다.

LG반도체의 산파역을 맡아 8년째 대표를 맡고 있는데 "트윈앤 스타"
전략으로 우선 몇몇 분야에선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

선병돈LG반도체부사장(사업본부장)도 현장을 중시하기는 마찬가지.

LG반도체 전신인 금성일렉트론 설립 4년만에 4메가D램을 생산.수출해
회사를 세계 메모리분야의 주도업체로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아남산업 황인길사장은 과학자출신 경영인.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로 20년간 재직해온 그는 안식년을 맞아 잠시
귀국했다가 장인인 김향수명예회장의 권유로 기술연구소장을 맡았다.

그는 아남이 반도체조립업체에서 한단계 도약,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기술제휴로 반도체웨이퍼 일관가공공장을 건설하는등 종합반도체업체로
도약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김창남아남산업부사장은 모든 사안을 완벽하게 검토한뒤 결론을 내리는
완벽주의형으로 황사장을 도와 아남호를 이끌고 있다.

< 김낙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