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체에 영원한 주인은 없는가".

부도로 쓰러진 한보철강을 포철이 위탁경영하게 됨에 따라 이 회사는
주인이 세번째 바뀌는 셈이 됐다.

한보철강의 원조는 지난 58년 이원재씨가 설립한 극동철강.

이 회사는 지난 76년 금호그룹으로 넘어갔다가 80년에 한보그룹이 인수
했었다.

포철의 위탁경영이 끝나고 제3자인수가 진행되면 한보철강은 네번째
주인을 맞게 된다.

비단 한보철강만이 아니다.

국내 주요철강업체들의 역사를 보면 설립된 후 창업자가 경영권을 계속
쥐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오너가 한번 바뀐 것은 기본이고 인천제철 연합철강 동부제강 등은
두번씩이나 주인이 바뀌었다.

철강업체들의 부침이 그만큼 심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국내 최대의 전기로 업체인 인천제철의 경우 원래 뿌리는 지난
53년 공기업으로 출발한 대한중공업이다.

이 회사는 70년 민영화 되면서 당시 이동준씨가 운영하던 인천제철에
흡수됐다.

바로 그 인천제철을 78년 6월 현대그룹이 인수해 세번째 주인이 된
것이다.

현재 동국제강 그룹 계열사로 돼 있는 연합철강도 원래 주인은 창업주
권철현씨이다.

지난 62년 설립된 이 회사는 77년 국제그룹에 인수됐다가 85년 국제그룹
자체가 공중분해 되면서 주인이 다시 바뀌는 운명을 맞는다.

당시 정부는 연합철강을 부실기업 정리대상에 포함시켜 동국제강에
경영권을 넘기지만 노조의 반대 등으로 진통을 겪었다.

결국 포철이 1년6개월간 위탁경영을 맡았다가 동국제강으로 경영권을
되 넘겨주는 곡절을 거치고야 제자리를 잡았다.

이 회사도 주인이 두번이나 바뀐 꼴이다.

포철의 위탁경영까지 포함하면 경영권자가 세번이나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동부그룹 계열인 동부제강도 연합철강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주인이 바뀌었다.

이 회사는 지난 55년 주창균씨가 설립한 일신제강이었다.

일신제강은 지난 82년 장영자 사건에 휘말려 부도를 냈다.

당시 자금난을 겪었던 이 회사는 사채시장의 돈을 끌어다 쓰다가
장영자씨의 돈에 까지 손을 대 화를 입은 것.

일신제강의 주거래 은행였던 상업은행은 이 회사를 포철이 인수해 줄
것을 요청했고 당시 안병화포철 부사장이 동진제강으로 이름을 바꿔 위탁
경영을 했다.

2년 3개월간의 포철 위탁경영을 거쳐 이 회사는 84년 동부그룹으로
넘어갔다.

특수강 업계도 이런 사정은 마찬가지다.

기아특수강은 원래 55년 김연준씨가 창업한 대한중기공업이란 회사였는데
지난 90년 기아그룹으로 넘어갔다.

삼미특수강의 경우 66년 김두식씨가 설립했다가 2세들(김현철.김현배
회장)에게 물려주었지만 경영난으로 주요 사업부문인 봉강공장과 해외
법인등을 포철에 매각해 사실상 주인이 바뀌는 셈이 됐다.

이렇게 따지면 국내 주요 민간 철강업체중 창업자가 현재까지 경영권을
갖고 있는 회사는 지난 53년과 54년 각각 설립된 강원산업(정인욱명예회장)
과 동국제강(장상태회장) 정도로 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철강업체들의 잦은 주인 바뀜을 이렇게 설명한다.

"철강산업은 양귀비와 같다는 말이 있다.

경기가 좋고 잘 될때는 쉽게 일어나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손댔다가는
큰 코 다치는 업종이란 뜻이다"(D제강 관계자).

워낙 막대한 투자가 뒤따라야 하는데다 보기와는 달리 기술적 변화에
민감해 그때그때 적절히 변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지적이다.

어쨌든 한보철강의 몰락은 "영원한 주인은 없다"는 철강업계의 징크스를
다시한번 증명해 주고 있다.

<차병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