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Economist지] '등' 사망 .. 중국 권력투쟁 불 지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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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사특약 독점전재 ]
등소평사망이 중국지도부의 권력투쟁에 불을 지필 것인가.
현재로선 등의 사망으로 인한 변화의 낌새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등의 사망소식이 알려진 당일에도 북경시내는 여느날처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교통체증도 다른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뉴스시간을 제외하고는 TV방송에서 축구경기 오페라공연 어린이쇼프로그램
이 평상시처럼 방영됐다.
중국정치의 상징적 장소인 천안문광장에서도 시민들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연을 날리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가이드들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운 채 광장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외견상으로 등의 사망으로 인한 변화의 조짐이 크지 않다.
확연히 달라진게 하나 있다면 중국국기인 오성홍기가 조기로 게양됐다는 것.
또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평복차림의 경찰들이 다른때 보다 눈에
많이 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처럼 등의 죽음은 일상생활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서방의 중국전문가들은 등사망이 중국지도부의 권력구도에도
큰 변화를 초래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등의 시대"는 오래전에 마감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등이 선택한 강택민국가주석이 후계자로서의 역할을 무난히 해내고
있어서다.
등의 사망이 "정치적" 의미를 갖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는 설명
이다.
만약 등이 조금 일찍 죽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강주석이 중국정치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 2년동안 강주석은 이미 군과 당을 포함한 권력핵심에 다수의 자기
사람을 심어 놓고 제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욱이 변화를 시도하기엔 때가 좋지 않다.
오는 7월 홍콩반환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어떤 누구도 변화를 시도하는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또 홍콩반환은 제쳐두고라도 중국은 현재 고실업률 범죄증가 부패만연등
풀어야할 경제.사회적 난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안정된 지도체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같은 인식이 정치지도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어 변화의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러나 등의 사망을 변화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으려는
야심만만한 정치세력의 등장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진단한다.
이들 세력에겐 우선 강주석을 등의 "절대적" 후계자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 그리 유쾌하지가 않다.
물론 그들도 이같은 불만을 겉으론 내색하진 않았다.
적어도 등의 생전에는 그랬다.
보수파의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도 높다.
이들은 등의 개방.개혁정책이 몰고올 사회.정치적 파장에 늘 신경을
곤두세워 왔다.
등이 더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들을 자극할 수도 있다.
개방과 개혁노선에 급제동을 걸고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와 반대지만 급진개혁파들도 가만 있진 않을 것이다.
이들은 지난 89년 6월 천안문사태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하면서 정치민주화
를 강도높게 주장하는 호기로 삼으려 할 수도 있다.
이들 모두 강주석에게 정치적으로 부담일 수 밖에 없다.
개혁파와 보수파 사이에서 정치적 선택의 폭이 그리 크지 않아서다.
강주석으로선 또 자기 스스로 쟁취한 자리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선택"
된 후계자라는 약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선택"된 후계자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징크스" 때문이다.
모택동에 의해 선택됐던 화국봉도 모택동이 죽은지 2년이 채 못돼 자리에서
밀려났다.
강주석이 제2의 화국봉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정리=김수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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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urning after,
Feb. 28, 1997, Economist"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5일자).
등소평사망이 중국지도부의 권력투쟁에 불을 지필 것인가.
현재로선 등의 사망으로 인한 변화의 낌새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등의 사망소식이 알려진 당일에도 북경시내는 여느날처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교통체증도 다른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뉴스시간을 제외하고는 TV방송에서 축구경기 오페라공연 어린이쇼프로그램
이 평상시처럼 방영됐다.
중국정치의 상징적 장소인 천안문광장에서도 시민들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연을 날리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가이드들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운 채 광장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외견상으로 등의 사망으로 인한 변화의 조짐이 크지 않다.
확연히 달라진게 하나 있다면 중국국기인 오성홍기가 조기로 게양됐다는 것.
또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평복차림의 경찰들이 다른때 보다 눈에
많이 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처럼 등의 죽음은 일상생활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서방의 중국전문가들은 등사망이 중국지도부의 권력구도에도
큰 변화를 초래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등의 시대"는 오래전에 마감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등이 선택한 강택민국가주석이 후계자로서의 역할을 무난히 해내고
있어서다.
등의 사망이 "정치적" 의미를 갖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는 설명
이다.
만약 등이 조금 일찍 죽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강주석이 중국정치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지난 2년동안 강주석은 이미 군과 당을 포함한 권력핵심에 다수의 자기
사람을 심어 놓고 제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욱이 변화를 시도하기엔 때가 좋지 않다.
오는 7월 홍콩반환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어떤 누구도 변화를 시도하는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또 홍콩반환은 제쳐두고라도 중국은 현재 고실업률 범죄증가 부패만연등
풀어야할 경제.사회적 난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안정된 지도체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같은 인식이 정치지도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어 변화의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러나 등의 사망을 변화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으려는
야심만만한 정치세력의 등장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진단한다.
이들 세력에겐 우선 강주석을 등의 "절대적" 후계자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 그리 유쾌하지가 않다.
물론 그들도 이같은 불만을 겉으론 내색하진 않았다.
적어도 등의 생전에는 그랬다.
보수파의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도 높다.
이들은 등의 개방.개혁정책이 몰고올 사회.정치적 파장에 늘 신경을
곤두세워 왔다.
등이 더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들을 자극할 수도 있다.
개방과 개혁노선에 급제동을 걸고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와 반대지만 급진개혁파들도 가만 있진 않을 것이다.
이들은 지난 89년 6월 천안문사태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하면서 정치민주화
를 강도높게 주장하는 호기로 삼으려 할 수도 있다.
이들 모두 강주석에게 정치적으로 부담일 수 밖에 없다.
개혁파와 보수파 사이에서 정치적 선택의 폭이 그리 크지 않아서다.
강주석으로선 또 자기 스스로 쟁취한 자리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선택"
된 후계자라는 약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선택"된 후계자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징크스" 때문이다.
모택동에 의해 선택됐던 화국봉도 모택동이 죽은지 2년이 채 못돼 자리에서
밀려났다.
강주석이 제2의 화국봉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정리=김수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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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urning after,
Feb. 28, 1997, Economist"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