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보사태와 뱅킹시스템 .. 양동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양동표 <딜로이트&투쉬 파트너>
한보라는 한 기업이 부도를 내면서 시작된 한보사건은 온 국민의
관심거리가 되어 연일 매스콤에서는 온통 한보 이야기 투성이었다.
검찰은 은행장들이 대출해준 대가로 돈을 받아먹은 사실을 밝혀내고
은행장들을 구속했으며 은행에 대출을 해주도록 압력을 넣은 대가로 돈을
받아먹은 정치인들도 구속했다.
이처럼 검은 돈이 왔다갔다한 내력을 밝히려는 과정에서 수많은 정치인과
"실세"들의 이름이 소문에 떠돌았다.
그래서 온 세상은 "한보리스트"의 미스테리에 빠져들어 매일같이 오늘은
누가 검찰에 소환되는가 하고 손에 땀을 쥐었다.
유명한 정치인들이 잡혀 들어가고 장관도 잡혀가고 은행장도 잡혀들어
갔다.
검찰은 중간수사결과 발표로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일단락짓는 것으로
보인다.
무리하게 대출을 해주도록 압력을 넣은 정치인과 돈을 받아먹고 대출을
해준 은행장등을 잡아넣었으니 검찰로서 해야할 일은 마친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드러난 부분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검은 돈을 고리로 서로
밀착되어 있는 정치(여야를 막론하고)와 기업의 부조리를 더욱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는 의견도 팽배하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하며 그렇게 하지 않고는 정경유착에서 기인된
기업풍토가 영영 바뀌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 전문인의 입장에서 한보사건을
미국식으로 관찰해 보고자한다.
우선 한보사건은 단순하게 그 시작만을 보자면 한 기업이 부도를 낸
사건이다.
또 부도를 계기로 그 기업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더니 부채변제 능력이
전혀 없어서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곤경에 처하게된 사건이라고 하겠다.
물론 대출과정에서 검은 돈이 왔다갔다하고 정치인의 압력이 있었고
하는 것이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이지만 사건의 요체는 아니고 그런 일은
한보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덤으로 밝혀진 사이드 쇼라고 하겠다.
사건의 요체는 역시 왜 한보가 부도를 내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한보가 만약 미국의 기업이었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위해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한보의 이사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의 이사회가 모두 회사내부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이사회는 경영진에 대한 독립적인 감독 감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음으로 찾아가야할 곳은 한보의 회계법인이다.
외부 감사인으로서 한보의 재무제표를 감사했을 때 어떠한 회계상의
무리가 있었는지를 반드시 알았어야하고 또 알아낸 내용을 주주들에게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한보는 비자금을 동원하기 위해 여러가지로 허위 회계처리를 했다고
밝혀지고 있다.
외부 감사인이 사설탐정은 아니므로 허위 회계처리한 부분은 잡아내지
못했다하더라도 한보철강의 자본과 부채의 비율이나 현금흐름 내역을
보면 과연 한보가 은행부채를 갚을 수 있겠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을
것이고 감사인은 그러한 내용을 공개하도록 되어있다.
은행의 외부 감사인도 마찬가지이다.
감사의견을 내기 전에 회계법인은 은행의 총 여신액 가운데 얼마만큼이
악성인가를 반드시 살폈을 것이고 한보에 대한 대출은 악성 대출로
인지했을 것이다.
악성대출액이 은행의 자본금만큼 커진다던가 한보가 은행빚을 갚기위해
또 은행빚을 냈다던가 하는것이 밝혀지면 외부 감사인은 그 은행에 대한
감사의견에서 한정의견을 냈거나 의견을 아예 유보했을 것이다.
또 은행감독원은 어떠한가.
대출과정에서의 비리는 잡아내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악성대출액이
산더미만큼 커져서 허덕이는 은행을 감사할 때 그러한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단 말인가.
결국 한보사건에서 우리가 명명백백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뱅킹시스템의 인프라가 전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문딩이 니 그동안 달나라에 갔다왔나.
그런 하나마나한 뻔한 소리는 와 하노"하는 분이 계실지 몰라도 이것은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할 이슈이다.
한보사건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미 제도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인프라가 전혀 제 기능을 못하고 집권층 실세인 아무개가 한마디하고
돈뭉치 가득한 사과상자가 배달되면 몇천억이고 몇조원이고 대출되는 그런
현실이 우리 뱅킹시스템의 후진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후진성을 뼈아프게 느끼고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않는한 우리는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80년대에 일본 제조업체의 눈부신 활약을 보고 일본식 경영을
배우자고 떠들썩했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와 일본은행들이 악성대출로 허덕이는 것을 보고는
일본식이 반드시 좋은 방식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있다.
일본식이란 물론 정부가 주도해서 민간기업의 의사결정을 대신해주는
방식을 말한다.
이러한 일본식 뱅킹시스템은 불행히도 아시아 여러나라에서 모델이 되어
지금은 여러나라가 "일본식 몸살"을 앓고있다.
일본경제는 금융기관의 경영부실로 불경기 5년이 되도록 불황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태국 인도네시아 대만에서도 은행의 총체적
부실이 크나큰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중국은 모든 여신을 정부가 관리하기 때문에 총여신액의 40%가 악성
대출인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바로 홍콩과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가장 견고한
금융시장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금융개혁이야말로 우리나라가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게 될것이냐를 판가름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한보사건에서도 누가 잡혀가고 누구는 안잡혀갔다는 사이드 쇼에만
흥미를 둘것이 아니라 뱅킹시스템의 후진성을 씻어내고 국제경쟁력을
제고하려는 견지에서 성찰해야 할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6일자).
한보라는 한 기업이 부도를 내면서 시작된 한보사건은 온 국민의
관심거리가 되어 연일 매스콤에서는 온통 한보 이야기 투성이었다.
검찰은 은행장들이 대출해준 대가로 돈을 받아먹은 사실을 밝혀내고
은행장들을 구속했으며 은행에 대출을 해주도록 압력을 넣은 대가로 돈을
받아먹은 정치인들도 구속했다.
이처럼 검은 돈이 왔다갔다한 내력을 밝히려는 과정에서 수많은 정치인과
"실세"들의 이름이 소문에 떠돌았다.
그래서 온 세상은 "한보리스트"의 미스테리에 빠져들어 매일같이 오늘은
누가 검찰에 소환되는가 하고 손에 땀을 쥐었다.
유명한 정치인들이 잡혀 들어가고 장관도 잡혀가고 은행장도 잡혀들어
갔다.
검찰은 중간수사결과 발표로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일단락짓는 것으로
보인다.
무리하게 대출을 해주도록 압력을 넣은 정치인과 돈을 받아먹고 대출을
해준 은행장등을 잡아넣었으니 검찰로서 해야할 일은 마친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드러난 부분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검은 돈을 고리로 서로
밀착되어 있는 정치(여야를 막론하고)와 기업의 부조리를 더욱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는 의견도 팽배하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하며 그렇게 하지 않고는 정경유착에서 기인된
기업풍토가 영영 바뀌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 전문인의 입장에서 한보사건을
미국식으로 관찰해 보고자한다.
우선 한보사건은 단순하게 그 시작만을 보자면 한 기업이 부도를 낸
사건이다.
또 부도를 계기로 그 기업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더니 부채변제 능력이
전혀 없어서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곤경에 처하게된 사건이라고 하겠다.
물론 대출과정에서 검은 돈이 왔다갔다하고 정치인의 압력이 있었고
하는 것이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이지만 사건의 요체는 아니고 그런 일은
한보가 부도를 내는 바람에 덤으로 밝혀진 사이드 쇼라고 하겠다.
사건의 요체는 역시 왜 한보가 부도를 내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한보가 만약 미국의 기업이었다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위해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한보의 이사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의 이사회가 모두 회사내부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이사회는 경영진에 대한 독립적인 감독 감시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음으로 찾아가야할 곳은 한보의 회계법인이다.
외부 감사인으로서 한보의 재무제표를 감사했을 때 어떠한 회계상의
무리가 있었는지를 반드시 알았어야하고 또 알아낸 내용을 주주들에게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한보는 비자금을 동원하기 위해 여러가지로 허위 회계처리를 했다고
밝혀지고 있다.
외부 감사인이 사설탐정은 아니므로 허위 회계처리한 부분은 잡아내지
못했다하더라도 한보철강의 자본과 부채의 비율이나 현금흐름 내역을
보면 과연 한보가 은행부채를 갚을 수 있겠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을
것이고 감사인은 그러한 내용을 공개하도록 되어있다.
은행의 외부 감사인도 마찬가지이다.
감사의견을 내기 전에 회계법인은 은행의 총 여신액 가운데 얼마만큼이
악성인가를 반드시 살폈을 것이고 한보에 대한 대출은 악성 대출로
인지했을 것이다.
악성대출액이 은행의 자본금만큼 커진다던가 한보가 은행빚을 갚기위해
또 은행빚을 냈다던가 하는것이 밝혀지면 외부 감사인은 그 은행에 대한
감사의견에서 한정의견을 냈거나 의견을 아예 유보했을 것이다.
또 은행감독원은 어떠한가.
대출과정에서의 비리는 잡아내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악성대출액이
산더미만큼 커져서 허덕이는 은행을 감사할 때 그러한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단 말인가.
결국 한보사건에서 우리가 명명백백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
뱅킹시스템의 인프라가 전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문딩이 니 그동안 달나라에 갔다왔나.
그런 하나마나한 뻔한 소리는 와 하노"하는 분이 계실지 몰라도 이것은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할 이슈이다.
한보사건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미 제도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인프라가 전혀 제 기능을 못하고 집권층 실세인 아무개가 한마디하고
돈뭉치 가득한 사과상자가 배달되면 몇천억이고 몇조원이고 대출되는 그런
현실이 우리 뱅킹시스템의 후진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후진성을 뼈아프게 느끼고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않는한 우리는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80년대에 일본 제조업체의 눈부신 활약을 보고 일본식 경영을
배우자고 떠들썩했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와 일본은행들이 악성대출로 허덕이는 것을 보고는
일본식이 반드시 좋은 방식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있다.
일본식이란 물론 정부가 주도해서 민간기업의 의사결정을 대신해주는
방식을 말한다.
이러한 일본식 뱅킹시스템은 불행히도 아시아 여러나라에서 모델이 되어
지금은 여러나라가 "일본식 몸살"을 앓고있다.
일본경제는 금융기관의 경영부실로 불경기 5년이 되도록 불황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태국 인도네시아 대만에서도 은행의 총체적
부실이 크나큰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중국은 모든 여신을 정부가 관리하기 때문에 총여신액의 40%가 악성
대출인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바로 홍콩과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가장 견고한
금융시장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금융개혁이야말로 우리나라가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게 될것이냐를 판가름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한보사건에서도 누가 잡혀가고 누구는 안잡혀갔다는 사이드 쇼에만
흥미를 둘것이 아니라 뱅킹시스템의 후진성을 씻어내고 국제경쟁력을
제고하려는 견지에서 성찰해야 할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