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열린 조흥은행 비상임이사회는 겉으로는 모양을 갖췄으나 잘 준비된
시나리오를 현실화시킨 것에 다름아니라는게 주변의 얘기다.

이사회 의장은 나이순에 따라 고홍명 빠이롯트만년필 회장이 맡았다.

은행측의 업무현황 보고가 있은후 고회장은 비상임이사들에게 번갈아가며
지지자들을 거론해줄 것을 요청했다.

모대주주대표가 장철훈 전무를 추천했다.

장전무로 행장후보가 단일화되는듯 했다.

그러나 이사회추천 비상임이사중 한명이 후보 이름을 각자가 써내는
투표방식으로 추천방식을 바꾸자고 주장했다.

이 방안이 표결에 부쳐져 결과는 7(표)대 6.

추천방식은 복수추천도 허용한다는 것.

1차 추천이 이뤄지고 뚜껑이 열렸다.

장전무 8 허종욱 상무 4 유병인 상무 4 위성복 상무 1표가 나왔다.

후보당선 하한선(비상임이사수의 3분의 2)인 9표에 모두 미달했다.

재투표.

이번엔 단수추천이었다.

장 8 허 4 유 1.

역시 9표 획득에 실패했다.

최종 투표에서 장전무는 허상무를 10대 3으로 눌렸다.

이 과정에서 "후보들의 정견및 은행경영 방향을 들어보자"는 소수파의
의견은 완전히 묵살됐다.

"어차피 결과가 그렇게 되더라도 남들이 보기좋게 하자"는 주장들이 득세
했다는 후문이다.

행장후보 선출후 비상임이사들은 장후보에게 감사추천을 요구했다.

세대교체를 감안해달라는 말과 함께.

유상무와 이용원 상무가 추천됐지만 비상임이사들은 유상무를 만장일치로
천거했다.

이같은 비상임이사회 결과는 우연히도 바로 전날 금융권에서 나돌던
"풍문"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풍문"은 임원중 "빅3"의 한명을 희생시키고 2명은 각개약진키로 했다는 것.

장전무는 후보선출후 기자간담회에서 "너무 많은 임원들이 한보책임을 지면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금융당국의 배려인줄 안다"고
변을 대신했다.

<이성태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