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초대석] 신영철 <선성화인 사장>..'한국상인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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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꾼으로서의 자긍심을 공인받은 것 같아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제 개인의 영광을 넘어 우리 상인계의 경사라고 봅니다"
최근 한국전통상학회 (회장 이훈섭 경기대 교수)가 제정한 "제1회
한국상인대상"을 수상한 신영철 (주)신성화인 사장(61)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신사장은 특히 "상인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술단체가 있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미력하나마 학회를 도와 상인에 대한 그릇된
풍토를 바로 잡는데 힘을 쏟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상인대상은 상인정신이 투철하고 상업발전과 사회봉사에 기여한
모범상인을 발굴하기 위해 제정됐다.
또 왜곡된 사농공상의 개념으로 상인들이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을 타파하기 위함도 그 취지.
한국 전통의 사농공상은 생업의 등권개념이지 결코 서열개념이 아니라는
것이 학회측의 설명이다.
신사장은 학회의 상인대상 선정기준인 가문계통 상업공적 사회봉사 등
각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신사장은 이번 수상을 "저의 노력보다는 평생을 농촌에서 생활해온
선친의 숭고한 인간존중정신이 그 배경이 된 것같다"며 겸손해 했다.
그의 부친은 작고한지 5년만인 지난 88년 인근 6개 동민들이 자진해서
공적비 (충북 청원군 북일면 인평동 소재)를 세울 만큼 박애정신이
투철했다고.
신사장이 지내온 길을 보면 바로 한국 전통상인의 그것이다.
초등학교 졸업후 생활이 어려워 한학당에서 한문을 수학한 그는
청년기에 청주시내에서 포목상에 투신, 65년 합자회사인 수복상회의
동업자로 참여했다.
이곳에서 5년간 청주시 포목상조합장을 연임하는등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상업권역의 지역적 한계를 느끼고 80년 신성직물 (신성화인 전신)이란
상호로 서울 동대문시장에 진출했다.
이때 국내 굴지 섬유회사의 전국총판을 맡아 한단계 도약할 기회를
잡는듯 했으나 제품에 하자가 발생,막대한 손실을 입는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후 줄곧 방림방적과 거래해오고 있으며 현재는 동대문종합시장
면나염제품판매협회장직을 맡고 있다.
신사장은 "상인이라면 당연히 이윤을 추구해야 하지만 먼저 상대방을
생각하는 공생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사업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나름의 상인관을
피력했다.
그의 사회봉사정신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일때 마을회관 건립기금을
선뜻 희사하고 청주로타리클럽부회장 새한라이온스클럽회장 등을 지내면서
벽지마을과 사회복지시설 등을 꾸준히 도와온 사실에서도 잘 나타난다.
현재는 법무부 보호관찰소 전국선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소년범의
선도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신사장은 대외경쟁력이 떨어지는 섬유업종을 바꿀 의향이 없는지를
묻자 "평생을 이 한 분야에만 종사해왔다"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정규용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일자).
제 개인의 영광을 넘어 우리 상인계의 경사라고 봅니다"
최근 한국전통상학회 (회장 이훈섭 경기대 교수)가 제정한 "제1회
한국상인대상"을 수상한 신영철 (주)신성화인 사장(61)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신사장은 특히 "상인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술단체가 있다는
사실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미력하나마 학회를 도와 상인에 대한 그릇된
풍토를 바로 잡는데 힘을 쏟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국상인대상은 상인정신이 투철하고 상업발전과 사회봉사에 기여한
모범상인을 발굴하기 위해 제정됐다.
또 왜곡된 사농공상의 개념으로 상인들이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는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을 타파하기 위함도 그 취지.
한국 전통의 사농공상은 생업의 등권개념이지 결코 서열개념이 아니라는
것이 학회측의 설명이다.
신사장은 학회의 상인대상 선정기준인 가문계통 상업공적 사회봉사 등
각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신사장은 이번 수상을 "저의 노력보다는 평생을 농촌에서 생활해온
선친의 숭고한 인간존중정신이 그 배경이 된 것같다"며 겸손해 했다.
그의 부친은 작고한지 5년만인 지난 88년 인근 6개 동민들이 자진해서
공적비 (충북 청원군 북일면 인평동 소재)를 세울 만큼 박애정신이
투철했다고.
신사장이 지내온 길을 보면 바로 한국 전통상인의 그것이다.
초등학교 졸업후 생활이 어려워 한학당에서 한문을 수학한 그는
청년기에 청주시내에서 포목상에 투신, 65년 합자회사인 수복상회의
동업자로 참여했다.
이곳에서 5년간 청주시 포목상조합장을 연임하는등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상업권역의 지역적 한계를 느끼고 80년 신성직물 (신성화인 전신)이란
상호로 서울 동대문시장에 진출했다.
이때 국내 굴지 섬유회사의 전국총판을 맡아 한단계 도약할 기회를
잡는듯 했으나 제품에 하자가 발생,막대한 손실을 입는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후 줄곧 방림방적과 거래해오고 있으며 현재는 동대문종합시장
면나염제품판매협회장직을 맡고 있다.
신사장은 "상인이라면 당연히 이윤을 추구해야 하지만 먼저 상대방을
생각하는 공생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사업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나름의 상인관을
피력했다.
그의 사회봉사정신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일때 마을회관 건립기금을
선뜻 희사하고 청주로타리클럽부회장 새한라이온스클럽회장 등을 지내면서
벽지마을과 사회복지시설 등을 꾸준히 도와온 사실에서도 잘 나타난다.
현재는 법무부 보호관찰소 전국선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소년범의
선도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신사장은 대외경쟁력이 떨어지는 섬유업종을 바꿀 의향이 없는지를
묻자 "평생을 이 한 분야에만 종사해왔다"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정규용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