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전산업은 조립.가공에서 출발했다.

금성사(현자 LG전자)가 59년 진공관식 라디오를 선보이면서 시작됐다.

이후 외국기술을 그대로 들여다 ''베끼던''시대를 거쳐 디지털비디오
디스크(DVD) 등 첨단 제품을 독자 개발하고 세계 50여개국에 현지 공장을
보유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가전사 경영진들의 면모도 이같은 산업의 발전단계와 무관치 않다.

시대가 변하면 경영자에게 요구되는 자질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조립.가공시대에는 좋은 경영자의 조건이 여공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동고동락하는 것이었다면 기술모방시대엔 원가관리에 철저한 관리자가
필요했다.

지금은 어느덧 독자기술개발시대.

시대의 흐름을 읽고 변화를 주도하는 창조적인 경영자가 요구되는 때다.

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의 윤종룡 삼성전자 사장은 "현장 우선주의"와
"스피드 경영"이 모토다.

지난 80년대 비디오사업부장 시절엔 세계에서 4번째로 VTR를 독자개발하는
등 가전부문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굳혔다.

윤사장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게 그의 기록 습관.

그룹 비서실이 이건희 그룹회장의 어록을 복원하는 데 그의 메모장을
활용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강진구 회장 시절 "좌 김광호, 우 윤종룡"으로 불리웠으나 반도체에
가전부문이 밀리면서 전기 전관 일본본사 등 "외곽"으로 돌다가 지난해말
그룹정기인사에서 전자소그룹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경기고와 미프린스턴대를 나온 구자홍 LG전자사장은 깔끔한 인상에
세련된 매너, 유창한 영어실력을 자랑하는 "젠틀맨".

그러나 경영스타일만큼은 외모와 달리 공격적이고 대담하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1등주의" "챔피언정신" 같은 모토는 구사장의 이같은 성격에서 나온다.

잭 웰치 등 해외 유명 경영인들과도 두터운 친교를 맺고 있다.

구사장의 리더십은 독특하다.

화를 내거나 명령조로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랫사람에게 지시할 때도 "내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요.

이런 관점에서 다시 한번 보시죠"하는 식이 그의 용병술이다.

구태회 LG그룹고문의 장남으로 이른바 로열 패밀리가문.

그러나 실력면에서 어느 전문경영인보다도 앞선다는게 널리 알려진 평가.

양재열 대우전자사장은 한국은행 출신의 전자업계 경영인.

지난 77년 대우그룹이 한국기계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인수팀에서
일한게 연이 돼 아예 대우에 입사했다.

사장님이라기보다는 "사람좋은 이웃집 아저씨"를 연상시키는 외모이지만
치밀하고 꼼꼼해 한번 대화를 나눠본 이들은 깜짝 놀란다.

"3백65일 술과 함께 산다"고 본인이 말할 정도로 호주가.

양사장의 가장 큰 장점중의 하나는 친화력이다.

공장 근로자나 대리점주 일반 사원 등 누구와도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고
고충을 들어준다.

사장실 문을 항상 열어 놓는 것도 누구든 들어와서 대화해도 좋다는
뜻이라고.

조석구 아남전자사장은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교육계 방송사 등을 두루
거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75년 김향수 아남그룹 명예회장을 한번 만난후 "인간"에 반해 아남에
몸담게 됐다.

못하는 운동이 없는 만능 스포츠 맨. 이영서 동양매직사장은 전자업계의
마당발.

배순훈 대우전자회장과는 경기고 동기동창이다.

가전 3사와의 차별화를 통해 동양매직 외형을 키운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대용량 세탁기 식기세척기 등이 그의 작품.

"회사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종업원까지 만족시킬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게 이사장의 지론이다.

신정철 해태전자 사장은 인켈과 나우정밀을 합병해 지금의 해태전자를
탄생시킨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염라대왕의 미소"라는 수필집을 출판할 정도로 문예에도 조예가 깊다.

오용환 롯데전자대표부사장은 지난 93년부터 사령탑을 맡아 롯데의
사업다각화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사내에선 "오 하사"라는 별명으로 불릴만큼 강력한 추진력과 리더십이
특징.

< 이의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