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사건이 어떻게 종결지어질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경제기자의 눈으로 본다면 걱정스럽기만 하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려는 노력조차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보사건은 그 특혜대출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른바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이런 사건이 터질 수
밖에 없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한보사건은 두말할 것도 없이 관치금융의 산물이다.

은행장이 권력자에게 꼼짝할 수 없는 풍토이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주인없는 은행이기 때문에 그런 엉터리대출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누구나 동의하는 보편적인 진단이기도 하다.

또 신한은행 등 주인이 있는 은행들이 한보에 물리지 않았다는 점만
봐도 설득력이 있는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제2의 한보사건을 막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는
자명하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문제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은행에 주인을 찾아준다는 것은 결국 은행을 대기업그룹에 넘겨주는 것
아니냐, 그렇게되면 은행이 대기업그룹의 사금고로 탈바꿈하게 되고 이는
경제력집중을 더욱 가중시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는 반론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막아야 한다는 인식과 은행경영의 효율성을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함께 수용하기가 현실적으로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지도 못다고 저러지도 못한채 20여년을 보낸 셈이다.

한보사건을 바로 이처럼 오랫동안 유보해왔던 "선택"을 더이상 미루지
못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라고 봐도 된다.

금융시장의 전면적인 대외개방이 눈앞에 왔다는 점에서도 이제 은행
소유 및 경영지배구조는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하기도 하다.

방법은 국민들의 "인식"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은행지배구조에 대한
규제를 풀고, 산업자본의 은행지배가 은행을 사금고화하는 꼴이 되지 않도록
감독기능을 강화하는 것 외에 달리 없다.

현행 "은행주 소유상한 4%"는 거슬러 올라가면 사연이 많다.

5.16직후 제정된 "금융기관에 대한 특별조치법"은 은행주식을 90%를 갖든
1백%를 갖든 의결권은 10%를 넘지못한다고 규정했다.

"부정축재자"들이 갖고 있던 은행주식을 모두 환수한데 이어 있을지도
모르는 대기업의 은행주매집을 원천적으로 막기위해 이런 규정까지 둔 것은
그만큼 대기업의 은행지배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 "의결권 10%이상 제한"의 특조법규정이 은행법으로 옮겨지면서 소유
상한 8%→4%로 더욱 강화된 것도 만성적인 인플레와 자금의 초과수요
상황에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가 가져올 폐해가 크다는데 사회적인 인식이
모아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배경을 갖는 은행주식 소유제한을 일시에 풀 경우, 경제여건이
바뀌기는 했지만 일반국민들의 관념적인 거부감은 결코 적지않을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우선 은행특주회사설립을 허용하는 방안 등이
바람직하다.

다수의 대기업이 함께 참여하고 최대주주 지분율을 일정수준(30%정도)
이하로 규제하는 은행지주회사에 한해 은행주소유를 자유화한다면 특정
대기업그룹의 은행지배도 막고, 주인있는 경영을 통한 효율성확보도 가능할
것이다.

맥아더사령부의 재벌해체이후 지주회사를 금지해온 일본에서도 이를
허용키로 방침을 정했다는 보도이고 보면, 경제력 집중을 우려해 공정
거래법으로 지주회사설립을 금지해온 우리도 이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을 검토 할만한 때가 됐다.

은행지주회사가 은행지배주주로 경영.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은행임원의 임기는 철저히 보장하고 공익위원중심의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토록 한다면 어떨지, 따져볼만한 과제다.

이와함께 은행감독기능 강화방안도 마련돼야 할 것은 물론이다.

현재의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 다기화돼있는
금융감독조직의 개편문제도 이제 본격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은행소유구조가 산업자본참여를 허용하는 쪽으로 바뀌는게 대세라고
본다면 더욱 그렇다.

감독체제개편 문제는 지금까지 재경원과 한국은행간 이해가 엇갈려
뜨거운 감자격이 돼온게 사실이다.

통화신용정책이라는 중앙은행의 고유기능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은행감독기능을 가져야 한다는 한은주장과 금융감독기능은
정부의 고유권한이라는 재경원의 주장이 맞서왔다.

그러나 어쨌든 금융업종간 영역제한이 점차 없어지고 있는 추세에 비추어
감독체계의 개편은 불가피하다.

은행의 경우만 하더라도 은행고유업무에 못지않게 신탁 증권 등 제2금융권
업무비중이 큰 편인데 이를 한은과 재경원이 나눠 감독한다는게 과연
효과적일지 의문이다.

어쨌든 한보사건을 계기로 금융전반에 대한 제도적인 개선책이 나와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도 고치지 않는 어리석음, 그래서 또 소를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