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당시 북한 최고 인민회의의장 김두봉의 비서로 있으면서 미
육군성 직속의 속칭 "캘로부대 (KLD)" 정보원으로 활동하다 월남한
김영옥씨(71.여.부산시 사하구 괴정2동)가 4일 부산지방보훈청으로부터
김영삼 대통령 명의의 "참전용사증서"를 받았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북한의 명문이던 평양서문공립고등여학교를
졸업한 김씨가 김두봉의 비서가 된 것은 지난 49년 9월.

김일성의 처 김정숙의 장례식에 안내원으로 차출돼 당시의 높은 학력과
깔끔한 일처리로 최고 인민회의 서기장 강나옥의 비서 눈에 띄어 발탁됐다.

최고 인민회의에서 일한지 얼마되지 않아 "캘로부대" 책임자 김원길씨
(78년 사망.당시 62세)를 알게 된다.

그러던중 50년 5월1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열린 메이데이 경축일에서
국수장수로 위장해 첩보를 수집하던 김씨가 동료 첩보원과 공작금 분배
문제로 싸움을 벌이면서 이들의 신분을 알게 됐고 신변에 위협을 느낀
김씨는 남한으로 피신해 버렸다.

피신했던 김씨는 6.25전쟁이 터지자 UN군 소속으로 군복차림에
중령계급장을 달고 다시 올라왔다가 1.4후퇴때 "신분보장은 물론 전세가
어려워지면 일본이나 미국까지 데려가 끝까지 돌봐줄 것"을 약속하고
김영옥씨를 데리고 월남했다.

이후 전중화일보기자로 중공군 포로통역관을 지낸 주모씨 (90년 사망.
당시 84세)를 만나 2남2녀를 낳았으나 경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던 남편이
집을 나가버려 생활고는 심해만 갔다.

이번에 딸 주복희씨(44)의 피나는 노력으로 45년만에 "명예회복장"을
받은 김씨는 그러나 딸이 기거하고 있는 사회복지시설인 부산시 사하구
괴정2동 한나모자원의 8평짜리 단칸방에서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