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경제팀은 할일이 많다.

그러나 시간은 많지 않다.

따라서 일의 대소완급을 잘 가려서 해야 한다.

또 집권 말기여서 정부의 힘이 빠져 있고 금년 말에 대선을 치른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경제팀의 할일중 하나는 당장 발등의 불을 끄는 위기관리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를 살리는 틀을 짜는 일이다.

서둘러야 할 일 중에서 가장 급한 것이 한보사태의 뒷수습이다.

한보사태 중에서 부정 비리적인 측면은 검찰의 수사를 통해 일단 한매듭
지어졌으나 경제적인 측면은 여전히 미결상태로 남아 있다.

부정 비리적인 측면이 완전히 밝혀지려면 수서사건처럼 시간이 좀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경제적인 것은 지금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한보사태에 대해선 종합적인 검토를 통해 건설 도중에 있는 철강공장을
어떻게 할지, 한보를 누가 맡아야 할지 등을 빨리 정해야 한다.

그냥 계속 짓는다고 하는데 과연 짓는 것이 기술적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지, 짓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지을지 결론을 내고 나서 추가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지금 상태에서 손을 떼는 것도 문제지만 돈을 더 들여 지어 놓았는데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가 나서는 곤란한 일이다.

한보수습등 시급 또 한보에 물린 은행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은행을 부실로 만든 법적 경영적인 책임은 준엄히 묻더라도 은행은
부실의 멍에에서 풀어 주어야 한다.

은행이 예뻐서가 아니라 신용안정을 위해서이다.

우리나라 은행들이 그 취약한 재무구조에도 불구하고 대내외적으로
이만큼의 신용을 유지하는 것은 정부가 뒷받침해 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경제논리대로 은행이 부실이 되어 하나라도 문을 닫으면 그 충격은
한보사태보다 더 할지 모른다.

한은 특융을 하든 재정지원을 하든 일단 급한 고비를 넘기고 금융산업
개편을 통해 새 금융구도와 질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대로 두면 은행은 제구실을 못할 것이고 그것은 전반적 신용
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다.

신용불안은 위기관리 측면에서 세심한 주의를 요한다.

지금 기업수지의 악화로 자금 운용이 어려워져 은행의 신축적 대응이
어느때보다 긴요하다.

또 앞으로 투자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도 은행이 적극적으로 움직여줘야
한다.

그러나 잇따른 사정(사정)으로 은행이 잔뜩 움츠러 들어 있다.

지하철에서 준법투쟁을 벌이면 교통이 막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은행이
준법투쟁을 벌이면 금융이 막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은행이 좀더 운신하기 쉽도록 부실채권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

국민들에겐 매우 면목이 안서는 일이고 또 특혜라고 집중공격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하지만 그런 일에 "총대"를 메는 것도 경제팀이 해야 할
일이다.

그 다음 급한 일은 외환 문제를 챙기는 일이다.

지금 외환 수급은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금년들어 예상보다 경상적자가 많이 나고 국제신용도 옛날만 못하다.

개방시대이기 때문에 극약요법을 쓰기도 어렵다.

따라서 외환수지와 보유외환 자산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또하나 급한 것이 실업대책이다.

불황으로 인해 지금도 고용불안이 심한데다 앞으로의 전망도 불투명해
과거 어느때보다 실업문제가 심각하다.

또 경제구조 조정에서 일어나는 인력수급 불균형과 문화적 마찰도 심하다.

큰 사회문제로 번질수 있는 가연성 폭발물이라 할수 있다.

과잉의욕이나 경험미숙(미숙)등으로 인한 작은 실수가 불씨가 안되도록
정말 세심한 주의와 대응이 필요 할 것이다.

경기가 좋아져 실업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당분간 저성장시대를 살아갈 지혜를 찾고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승급대신 직장 같이 갖기(Job Sharing)를 택할수 밖에 없고 앞으로
대대적으로 일어날 인력 재배치를 순조롭게 할수 있는 사회적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불황기엔 낮은 기대와 불만의 최적 배분이 가장 긴요하다.

발등의 불을 끈 다음엔 새 경제팀은 경제를 살리는 틀을 짜기 시작해야
한다.

지금의 불황은 경기 순환적인 것에다 구조적인 것이 겹쳤기 때문에
쉽게 회복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전치 2~3년 정도의 중증이다.

따라서 당장 경기를 회생시키기보다 앞으로 경제가 살수 있는 새 경제
시스템의 기초를 놓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새 경제틀이 어떤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빨리 의논해서
정하고 그것을 널리 알려야 한다.

그래야 안팎의 불안감이 가실 것이다.

지금은 방향도 설계도도 없이 같이 노력하자는 식이기 때문에 더욱
불황감을 느끼고 장래에 대한 확신을 못 갖는 것이다.

경제의 새틀짜기엔 산업구조 조정, 신산업 만들기, 효율적 네트워크
구축, 유연하고 창조적 시장구조, 국제화된 사고와 정보화 시스템을
망라한다.

또 무엇보다 겉멋을 부리는 당위론보다 실용적 정책을 써야한다.

경제시스템을 고치는 일이 가시화되기만 해도 경제는 싹이 보일 것이다.

새틀짜기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므로 그 경제적 과실은 다음 정권에
가서나 딸수 있을 것이다.

대선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경제팀은 위기관리를 잘해 파국을 면하고
경제를 더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장래를 위한 기초만 놓아준다 해도
큰 성공일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