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여-야합의로 사실상 타결돼 금명간
국회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작년말 정부의 노동법개정안이 여당 단독으로 기습처리됐던 때에 비하면
이번에는 여-야 합의에 의한 단일안이란 모양새가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많은 문제점들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새삼 강조할 것도 없이 노동법개정은 선진노사관계를 법제화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해 국가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당장 수렁에 빠진 경제를 건져낸다는 가시적 취지도 함께였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에 필수적인 정리해고제 도입은 2년의
유예를 둠으로써 당장의 경제살리기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게 됐다.

또 노동계의 요구대로 복수노조는 즉각 허용키로 하면서 노조전임자
임금지급및 쟁의기간중 임금문제 등에서 경영계의 요구를 무시하고 노조에
편향된 결정을 내린 것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법개정의지가 실종된
대표적 사례라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마지막까지 쟁점이 됐던 노조전임자 임금문제가 상식선 밖에서
결말이난 것은 유감이다.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식으로 노조활동만 하는 노조전임자가 거의 없을
뿐더러 있다 해도 이들의 임금을 사용자가 지급하는 사례가 없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현재 4천3백여 기업에서 1만1천여명의 노조전임자가
회사측으로부터 임금을 지급받고 있다.

앞으로 전임자 숫자는 복수노조의 허용으로 크게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

이로인해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큰 경제적 부담이 될것은 뻔한 이치이다.

생산에 참여하지 않고 오직 노조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노조에서
임금을 주는 것이 마땅하며 그래야만 노조전임자도 떳떳하게 활동할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전임자 임금지급금지를 5년동안 유예하는 것도 모자라
노사공동으로 기금을 만들어 전임자임금을 주도록 한 것은 결과적으로
노조전임자 임금을 계속 기업측에 부담시키겠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뿐만아니라 무노-무임 원칙을 도입하면서도 임금지급을 "금지"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는 파업근로자에게 임금지급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식으로 얼버무려 분쟁의 소지를 남겨 놓았다.

결과적으로 선진 노사관계의 법제화도,노동시장의 유연성도 확보하지
못한채 본래의 취지와는 동떨어진 법을 만들고 만 셈이다.

노사관계법은 궁극적으로 노사가 단위사업장에서 어떤 식으로 조정
적용하느냐에 따라 그 실효성이 판가름나게 돼있다.

새 노동법의 성패는 당장 이달부터 시작되는 사업장의 임.단협상에서
시험대에 올려지게 될 것이다.

정부로서는 이번 법개정에서 미흡했던 부분들은 시행령 등을 통해
최대한 반영하고 새법의 운용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면밀히
검토 보완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