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생도 그저 생물학적으로만 보면 먹고 소화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태어나면서 먹기를 시작하고 죽음은 먹는 것의 그침을 의미한다.

"새남터를 나가도 먹어야 한다"는 우리 속담은 곧 죽는 일이 있어도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L A 세네카는 일찍이 "자립에의 커다란 첫걸음은 만족스러운 위에
있다"고 말한바 있다.

그러면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어느 정도인가.

94년 현재 29%에 불과하다.

이는 93년의 33.9%보다 크게 줄어든 수치이다.

아마 지금은 이 수준보다 더 낮아져 있을 것이다.

사료용 (84년 8백48만t)을 제외한 식량자급률도 52.7%밖에 안된다.

93년의 61.4%보다 무려 8.7% 포인트나 저하된 것이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주곡인 쌀의 경우는 자급률이 97.6%가 되어
다행이었는데 이것도 2004년에는 90%이하로 떨어질 전망이다.

인구통계 전환이론에 따르면 자본이 인구보다 빨리 증가하여 세계
주민의 물질생활수준 향상이 인구증가율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설은 지금까지의 현상에서 보면 선진국에나 들어맞는
말이다.

"부자는 돈이 늘고 가난한 자는 자식이 는다"는 것이 진실에 더 가깝다.

빈곤한 나라들에서 급증하고 있는 인구는 세계 식량문제의 위험신호인
셈이다.

세계 환경감시기구인 월드워치연구소는 현재 세계 식량비축량이 사상
최저수준인 51일분으로 줄어 곡물파동이 우려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는 곡물가를 두배나 치솟게 했던 73년의 55일분보다도 적은 것이어서
최소한 70일분으로 늘리지 않으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더구나 세계 최대의 인구를 안고있는 중국이 식량수입국으로 전락하면
사태는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

결코 남의집 불구경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북한 주민들이 극심한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한반도도 이미 부분적으로 식량파동에 휩싸이고 있다고 볼수 있다.

갑자기 어떤 돌발적 일로 남북이 통일된다면 한반도 전체가 식량파동에
직면하게 될 우려를 경계하지 않을수 없다.

식량자급에 다부지게 대처해야할 새로운 농업대책이 필요한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0일자).